나는 지난 4월 17일 미국 워싱턴 DC 지역에 연화정사를 개원한 이후 불교와 사회의 각 그룹과의 소통을 전제로 몇 가지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7월 24일 저명한 재미 비교종교학자인 조지 메이슨 대학의
노영찬 교수를 모시고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를 모색한 첫 번째 열린법회를 개최해 미주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연화정사는 일반사회와 소통하는 열린법회를 매달 개최하고 있다.

다불교, 다종교, 다문화를 뛰어넘어 각 세대와 다양한 현대적 가치가 요구되는 공간에서 소통을 소홀히 하면, 한국불교는 현대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소통의 중요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나는 소통과 관련해 다음의 네 가지 항목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 한국불교는 다른 불교 전통들과 소통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나는 영어 단수형인 Buddhism(불교) 보다 복수형인 Buddhisms(다불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폐쇄적이고 몰지각적인 민족주의 세계관은 다른 불교전통을 가치중립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다불교 시대에 맞지 않다. 한국불교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거창한 구호로 자리매김한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한국불교는 다른 불교 전통보다 우월하다”는 전제와 “불교는 다른 종교 전통보다 우월하다”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른 불교 전통과 한국불교 전통은 많은 차이점과 동일성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한국불교가 다른 불교 전통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의 다문화 그리고 다종교 사회에 맞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다른 불교 전통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을 한국불교계에 강력히 충고하고 싶다. 그렇게 했을 때, 한국불교는 다른 불교 전통의 장단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불교는 다른 종교 전통과 소통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불자들이 부정하고 싶어도, 세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무신론교인 불교가 아니다. 유일신교로 아브라함의 종교들로 분류되는 유태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이다. 다른 종교보다 불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순간, 불교는 그 다른 종교들과 갈등과 폭력 관계를 야기 시킬 수밖에 없다. 내가 첫 번째 항목에서 주장하였듯이,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성과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불교의 우월성을 다종교 사회에서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아브라함의 종교들에 비해서 불교는 비폭력적이라고 일부 주장하고 있으나, 제도권 불교는 호불교, 호국불교, 호정권불교 등등 각종 미사어구로 제도적인 폭력을 끊임없이 양산해왔다. 제도권 불교는 부처님의 비폭력 정신을 실천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 비폭력 정신을 다른 종교와의 관계성에서 실천해야 한다.

셋째, 불교는 현대 사회의 주요 가치들인 민주, 자유, 평등, 평화 등과 소통해야 한다. 많은 주류 종교단체들은 양식있는 지식인 그룹들에 의해 매우 비민주적인 집단들로 인식되는 것 같다. 불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을 위시하여 대다수의 세계 주류 종교 단체들은 신자와 성직자 그룹을 차등적으로 분류하여 성직자의 독재를 합법화하고 있고, 전근대적인 여성 차별주의를 배제하기는커녕 당당히 그리고 과감히 조직 내에서 반영하고 있다. 불교의 재가 신자 그룹들은 그들이 소속된 종교 조직의 운영에 경제적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도 의사 결정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현대의 각종 가치 개념들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조직을 민주화했을 때, 한국불교는 현대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불교는 사회의 각 분야와 소통을 적극 해야 한다. 불교는 사회 속의 불교이지 사회와 동떨어진 불교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불교는 다불교의 하나이고, 불교는 다종교의 하나이다. 즉 불교는 다양한 사회 조직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때문에 불교는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과학계, 언론계, 법조계, 스포츠계, 연예계, 의료계, 학계 등과 연속적이고도 유기적인 소통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불교는 각 사회 단체와 더불어 공존할 수 있고 사회의 흐름 속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층들은 이전의 세대에 비해서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 또한 젊은 층을 상대로 한 종교계의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불교가 미래사회와 단절되지 않으려면 세대와 계층과 분야를 막론해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미국 워싱턴 연화정사 주지 · 코스탈 캘로라이나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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