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율장은 승가의 행위 규범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만 재가의 윤리 규범을 거의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의 율장(律藏)과 경장(經藏)에 산재해 있는 재가의 윤리규범을 체계화하여 스님들과 불

교학자들은 재가 불자들이 불교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윤리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인도의 재가 불자들은 법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인도인들을 규정하는 힌두교의 마누법전을 받아들였고, 동아시아의 재가 불자들은 유교의 법적 그리고 행위규범을 받아들였다. 재가의 윤리와 법적 규범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 인도의 힌두교와 동아시아의 유교와 다르게, 불교는 율장에 기반하여 출가의 승원 전통을 매우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한국불교 승단은 과연 율장의 정신과 행위규범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는가?

동아시아 불교는 전혀 다른 두개의 단어들인 ‘계(戒)’ 와 ‘율(律)’ 을 합성하여 ‘계율’이라는 하나의 복합어를 만들어 관례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인도의 범어 율장에는 그 복합어의 용례가 없다. 인도의 범어 율장에서 ‘계’는 처벌과 강제성을 포함하지 않는 개인적 차원의 윤리 개념이고 ‘율’은 처벌과 강제성을 포함하는 개인 또는 사회 조직 차원의 법 개념이다. 그런 측면에서 재가를 위한 계는 있지만 율이 없기 때문에, 자율적이고 윤리적인 계목의 수지를 집단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만 재가에게 요구할 수 있고 처벌과 강제성을 전제하는 율의 수지를 재가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출가는 개인적 그리고 조직 차원에서 율에 의거해 승단을 운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삼귀의계와 오계를 자발적으로 수지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재가 불자라고 부른다. 계의 울타리 안에서 불교적 삶을 서원했기 때문이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재가의 삼귀의계는 좀 다른 차원에서 출가에게도 요구된다. 어느 재가자가 삼귀의계를 수지하지 않을 경우, 불교 교단은 강제성을 가진 율을 적용하여 그 재가자를 교단에서 추방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삼귀의를 수지하지 않을 경우, 어느 누구도 율장의 정신과 규범에 의해 승단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이미 출가한 사람은 승단에서 추방된다. 다시 말해서, 자발성을 강조하는 윤리적 개념의 계만 재가에게 적용되지만, 강제성과 조직 규율을 함의하는 법 개념인 율은 계와 더불어 출가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재가자들에 비해 출가자들에게 매우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한다.

재가가 자발적으로 수지해야 할 윤리규범은 오계이고, 그 오계는 첫째, 살생을 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셋째,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라다. 재가의 오계와는 우선 순위를 달리하면서, 승가는 아래의 네 가지 실천규범을 필수조건으로 전제한다. 어느 출가자가 그 네 가지 실천규범 가운데 하나라도 어길 경우, 그는 사회의 사형에 상응하는 바라이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되어 승단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추방된다. 그 네 가지 승단의 실천규범(바라이법)은 첫째, 음행을 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셋째, 살생을 하지 말라. 넷째, (깨닫지 않고도 깨달았다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다.

위의 네 가지는 승단의 구성원에게 필수불가결한 실천규범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네 가지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실천규범을 수지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한국불교 승단의 범계와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교계 언론들을 통해 자주 접하면서, 나는 한국 승단의 일원으로서 자괴감을 갖곤 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그 네 가지 실천규범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항목을 설정해 시리즈 형태로 승단의 도덕성 회복운동을 불교저널의 지면을 통해 제안하려고 한다.

한국불교 승단의 도덕성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한국불교 승단은 재가 불자들과 사회의 구성원들로부터 지탄과 외면을 받을 게 자명하다. 나아가 한국불교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이러한 이유로 출재가가 함께 승단의 범계자들을 추방하여 승단의 도덕성 회복을 견인해 한국불교의 발전을 추동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 연화정사 주지 · 코스탈 캘로라이나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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