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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밤은 괴롭다

기사승인 2019.07.11  15: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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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 촘롱에 도착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왔기 때문에 정상에 올라섰을 때 모든 고난이 끝난 안도감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촘롱 풍경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비탈에 롯지와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고, 안나푸르나 트레킹 구간의 모든 롯지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도매상도 있는 꽤 큰 마을이었습니다. 남편과 난 포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포터는 자신이 더 익숙한 숙소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롯지 주인이 마당에서 우리를 반겼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꽤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포터가 우리에게 방을 지정해주고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거대한 파도와 같은 실망감이 덮쳤습니다. 꼬마전구가 켜진 어둑어둑한 방인데 너무 춥고 습했습니다. 온기라고는 없었습니다. 거기다 포터가 가져다준 이불은 한 번도 안 빨았는지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오늘 밤 이 차갑고 축축한 방에서 누렇고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게 숙제를 마쳤는데 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춥고 눅눅한 밤, 여유 있는 계획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습니다. 바깥이 아무리 영하로 내려가도 옥장판 위에서 추운 걸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육체는 이런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한 불편함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됐던 것입니다. 분명 이 고통 또한 길들여질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적응하게 되니까 나중에는 추위를 덜 느끼게 되는 시간도 오겠지만 어쨌든 갑작스런 육체의 불편함에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습니다.

   
▲ 파도와 같은 절망감에 빠졌던 롯지 내부모습. 굉장히 춥고 눅눅했다.

그런데 포터는 나의 침울함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포터는 롯지에 도착하고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난 그를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만두를 사오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으로, 스틱을 조절해줄 때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그리고 출렁다리에서 내 팔을 잡아 주었을 때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매우 따뜻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촘롱 롯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가 보여준 태도는 대체로 센스 있고 친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채권자로 돌변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베푼 친절을 다 갚으라는 듯 우리에게 이것저것 요구했습니다. 핫샤워를 하라고 하고, 피자를 먹으라고 하고, 충전을 하라고 하고, 물통에 뜨거운 물을 채우라고 했는데, 이 모든 게 돈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주문받을 때 쓰는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자꾸만 재촉하니까 그가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돈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낮 동안 쌓였던 신뢰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트레킹 내내 포터는 이렇게 양면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졸졸 흐르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가 젖어있었지만 말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드라이기도 없지만 롯지에는 전기제품을 꽂을 콘센트가 없었습니다. 얼른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침낭으로 들어가 핫팩에 의지했습니다. 얼마나 추웠는지 핫팩을 붙인 배가 타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배에 화상자국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가장 큰 복병은 밤이 너무 춥다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에 올라오기 전에 추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베이스캠프에서 추울 건 예상했지만 첫날밤인 촘롱부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추울 줄은 정말 예상 못했습니다. 추위로 밤은 통째로 날아갔다고 봐야 합니다. 밤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조용하게 글도 쓰고 히말라야의 고요를 느끼면서 나름 여유 있게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 계획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냉동실에 들어간 것 같은 추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낭 안에 들어가 빨리 잠드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 하룻밤 롯지에서 묵으면서 우리의 지출내역. 포터는 주문지를 들고 다니면서 우리가 이것저것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포터가 원망스러워…”

남편은 춥지도 않은지 밖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참 누워 있다가 나가서 포터와 남편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히말라야의 산골마을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마차푸차레의 하얀 봉우리가 붉게 물든 모습은 인상적이었으며 우리가 묵은 숙소 아래쪽 마을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어떤 풍경도 내 심장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냉동실에 갇힌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어떤 것을 보아도 별다른 감동이 없고 어떻게 하면 이 추위에서 벗어날까 하는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포터가 저녁을 먹으라고 재촉해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이

   
▲ 하룻밤 롯지에서 묵으면서 우리의 지출내역. 포터는 주문지를 들고 다니면서 우리가 이것저것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비수기고 방학도 아니라서 트레킹 내내 한산했습니다. 낮에 걸을 때는 조용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은데 밤에는 사람이라도 좀 북적이면 덜 추울 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춥고 어두운 식당에서 주인과 포터는 오랜만에 고향사람을 만난 사이처럼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야채볶음밥과 국수, 그리고 빵을 시켰습니다. 빵은 꿀과 함께 준다고 해서 시켰는데 너무 말라 있고, 꿀은 너무 굳어있어 거의 남겼습니다.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뜨거운 물을 받아서 얼른 침낭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는 뭐든 빨리빨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덜덜 떨려서 마음도 급해졌습니다.

안나푸르나산 롯지에서 다섯 밤을 잤는데 밤마다 이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원래는 약간 여유 있게 6박 7일 일정으로 천천히 히말라야를 만끽할 생각이었는데 추위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서둘러 하루를 앞당겨 5박 6일만에 베이스캠프를 찍고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정말 히말라야에서는 밤마다 추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고,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밤을 보냈습니다.

이건 정말 예측하지 못한 현실이었습니다. 낮 동안 6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을 걷고 밤이 되면 피로한 육체에 휴식을 얻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밤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햇빛 속을 걷고 있는 낮 시간이 히말라야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지금 가장 그리운 것도 그 시간입니다.

김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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