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가는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은은한 들꽃 향기가 실바람 타고 온다.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일어나 발걸음도 신이 난다. 새털 같이 가벼운 마음은 깊은 밤 작은 사립문을 두드리는 듯하고,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물장구 칠 때의 기분 같기도 하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인적이 끊긴 성미산은 깊은 산처럼 느껴진다. 나에겐 오히려 자연을 즐길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니 나의 가쁜 숨이 어느새 잔잔해졌다. 산 능선 따라 피어난 들풀 사이로 나비와 벌 그리고 작은 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사람을 대신하여 산책 나온 듯 자유롭다.

예로부터 나비는 늘 꽃과 함께 그려진 상서로운 존재다. 부귀, 장수, 사랑, 번영 등 인간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 욕구를 대신하였기에 특히 그림이나 문학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춘향전》 〈사랑가〉 중에서 춘향이에게 이몽룡이 읊는 대목이다

우리 둘이 사랑타가 생사가 한이 있어

한 번 어차 죽어지면 너의 혼은 꽃이 되고

나의 넋은 나비 되어 춘삼월 춘풍 시에

네 꽃송이에 내가 앉아 두 날개 활짝 벌리고

너울너울 춤추거든 네가 나인줄 알려무나

한 마리 나비가 꽃 위에 내려앉으려는 모습을 바라보니 청춘 남녀의 애절하고도 간절한 사랑이 숲에서 전해져오는 듯 나 또한 춘향전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갈지(之)’ 자 형태로 날다

나비가 꽃향기에 취해 주변을 날아다닌다. 정말 신이 난 듯 화분(花粉) 먹기에 심취하여 살금살금 다가가도 모른다.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듯 참으로 편안하다. 그러다가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순식간에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것도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갈지(之)’ 자로 난다.

문득 왜 나비는 이리저리 술 취한 듯 휘청거리며 날아가는지 궁금해졌다.

천적인 새는 직진성이 강하니 이리저리 날아가는 나비를 사냥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생존의 법칙으로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방어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야생에서 1g도 될까 말까하는 미약한 존재가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기란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찰나에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연속의 생존환경은 “강해져야 살아남고 민첩해야 살아남는다.” 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나는 이 작은 성미산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삶도 인간의 그것만큼이나 처절함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누리고 있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반성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나비는 대략 264종에 이른다고 하는데 성미산에는 푸른부전나비를 포함한 7종의 나비가 관찰되고 있다.

배추흰나비, 세줄나비, 네발나비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관찰되는데 특히 배추흰나비의 경우 성미산 인근 경로당 어르신들이 주변 작은 텃밭에 배추를 키우고 계셔서 유독 잘 나타난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생태수업의 일환으로 알을 부화시킨다고 하니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배추흰나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가에 펼쳐진 사랑

6월에서 8월까지 산비탈 양지 바른 곳에 엉겅퀴가 자주색 꽃을 피운다. 같은 곳 같은 자리를 잘 지키며 뿌리를 내려서인지 해마다 꽃이 필 때쯤이면 나비가 날아든다. 엉겅퀴는 소화기, 운동계 질환과 신진대사를 다스리는 약재로도 쓰이고 지혈작용에도 좋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 효능이 알려져서 건강식품으로도 사용한다. 엉겅퀴가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양한 나비들이 찾아온다.

▲ 엉겅퀴와 나비 <사진=이민형>

엉겅퀴는 개망초나 민들레와 달리 자주색 또는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특히 하얀색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배추흰나비가 날아오면 화려한 세레나데를 감상할 수 있다.

보통 같은 종의 여러 암수 나비가 날아들어 꽃봉오리를 옮겨 다니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선택한다. 한 마리의 나비가 꽃 위에 사뿐히 앉아 화분을 먹을 때면 아주 잠시 머물며 먹기도 하고 때론 내려앉을듯하다가 허공으로 올라간다. 그러다가도 구애를 위해 날아오는 또 다른 짝을 위해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기도 한다. 구애를 위한 탐색이 끝나면 사랑의 세레나데를 펼친다.

쫓아가면 달아나고 너무 멀어지면 다시 가까이 가기를 반복하며 서로의 날갯짓을 바라본다. 그들만의 밀고 당기기인가? 천적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일 텐데 이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는 천적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목숨을 건 구애를 한다. 무사히 내려온 암컷이 민들레 꽃 위에 앉으니 곧바로 수컷도 내려앉는다.

간절한 그들의 사랑도 인간의 사랑만큼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어느 생명이건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작은 생명체인 나비가 유독 우리 인간에게 끼쳤던 정서가 정겹고 아름다우니 더더욱 이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작은 실천의 시작일 것이다.

나는 나비인가 꽃인가

종교적 관점으로 나비를 바라보면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의 상징으로,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는 알,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나비로 이어지는 태생 과정이 종교적 관점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산과 들에 피어난 꽃 위로 향기를 머금은 나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함을 전해준다. 사진 찍는 일을 잠시 멈추고 그늘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순간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글귀가 나를 사유의 시공(時空)으로 데려간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나비였다.

참으로 즐거웠는데 장주인 것을 알지는 못하였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니 장주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건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건가?

나와 나비는 분별이 있으니 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

-장자 내편 제2편 제물론26-

현실이라고 하는 이 세계가 과연 무엇일까? 먹고 자고 친구를 만나고 진학하고 결혼하고 자식이 태어나고 가족 위해 돈을 벌고 늙어 병들고 생을 마감하는 이 모든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현실이라고 인지하는 이 세상과 이 모든 순간이 또 다른 꿈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무위(無爲)한 나 자신을 엿보게 되었다.

▲ 호랑나비 <사진=이민형>

이런 생각으로 눈앞이 흐려지다가 어느 순간 눈의 초점을 맞추니 눈앞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사진기를 들고 셔터를 누르며 나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존재에 대해 의식을 하고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호랑나비는 극지방을 제외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모두 8종이 분포하며 개체 수가 많다.

우리의 민화에도 나비가 자주 등장한다. 그중 호랑나비는 다른 나비에 비해 크기도 크고 색깔과 무늬가 화려해서 민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호랑나비의 크기는 약 2~3cm정도이다. 성충의 천적은 사마귀와 거미로 알려져 있는데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로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인간 또한 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비는 향샘(香腺)이라고 하는 기관을 갖고 있어서 공격을 받거나 위급한 순간에 악취가 나는 물질을 방출한다고 한다.

부귀의 상징이고 죽음에서 부활 그리고 환생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애틋한 사랑까지 인간의 삶에 매우 밀접한 나비, 이들을 자연에서 관찰하고 바라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