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설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불구(기물)을 설명하는 다여 스님. <사진 제공 =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는 지난 8월 15일 종교문화탐방의 일환으로 강원도 삼척시에 소재한 사찰 안정사(대불교조계종)에서 진행된 ‘목련존자 일대기 땅설법’을 참관하였다. 이날은 음력 7월 15일에 해당되어 세시풍속에서는 백중(百中),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 등으로 부른르며, 전통적으로 새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리고 농가에서는 머슴에게 돈을 주며 하루를 쉬게 하기도 하였다. 불교에서는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갔던 승려들이 수행을 마치고 해제(解制)하는 날로서, 특히 석가모니의 제자인 대목건련(大目乾連, 일명 목건련, 목련, 또는 목련 존자가라고도 한다)이 자신의 어머니가 사후 전생의 죄업으로 아귀(餓鬼)가 되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조언에 따라 해제일에 맞추어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였다는 고사에 따라 조상의 선처환생(善處還生)을 바라며 재를 올리기도 한다. 이 의식이 바로 우란분재(盂蘭盆齋)로서, 이러한 우란분재의 기원 고사를 이야기한 경전이 《우란분경(盂蘭盆經)》이며, 우란분절이라는 절기명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안정사에서는 오전에 ‘정결의례(淨潔儀禮)-시련(侍輦)-대령(對靈)-관욕(灌浴)-신중작법(神衆作法)-불공(佛供)’의 일반적인 불교 재례(齋禮) 양식을 따르는 우란분재가 간단히 설행되고, 땅설법은 오후에 진행되었다.

불교재래 우란분재 설행 후 진행

그런데 《우란분경》의 이야기는 더욱 설화적인 양상으로 발전하여 《목련경(目蓮經)》이라는 이본(異本)을 유행하게 하였다. 《목련경》은 《우란분경》과 기본적인 소재와 이야기 틀은 같지만 목련이 출가하기 전의 이야기가 앞에 붙으며, 목련의 어머니가 사후에 겪는 과보도 아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비지옥-흑암지옥-아귀-개〔犬〕의 단계를 유전한 끝에 아들인 목련의 공덕과 부처의 위신력의 도움을 받아 천상의 도리천궁(忉利天宮)에 태어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때 아귀 단계에 있는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 우란분재였다. 일반적으로 《목련경》은 《우란분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동아시아의 효(孝) 사상이 결합하여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학자에 따라서는 《우란분경》까지도 중국 찬술의 위경으로 평가하기도 한다.(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가령 장춘석은 <목련 설화 중 나복(羅卜) 고사의 전변과 그 원형>(《중국어문학》 30, 1997)이라는 글에서 목련 고사 또는 효 문화의 인도적 연원을 추적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나복’은 《목련경》에서 소개되는 목련의 출가 이전 속명이다.) 이에 중국과 한국의 사찰에서는 백중날 법회 중에 《목련경》의 내용을 대중에게 강설하기도 하였다. 지난 8월 15일 음력 백중날 안정사에서 ‘목련존자 일대기’의 땅설법이 행해진 것은 이와 같은 경위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삼회향 일부로 인식

주목해야 할 것은 ‘땅설법’이다. 오랫동안 땅설법은 그 명칭과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으나 실체와 내용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채 베일에 싸여 있었다. 1976년 최정여가 <사원잡희(寺院雜戱) ‘삼회향(三回向)’(속칭 땅설법)>이라는 논문(《도남 조윤제 박사 고희기념논총》, 서울: 형설출판사)을 발표한 이래 최근까지 그것은 “영산재와 같은 불교 사찰의 큰 의식 끝에 흔히 ‘삼회향’ 속칭 ‘땅설법’이라 이르는 의식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언급되었을 뿐이다(이보형, <삼회향(三回向 땅설법)의 공연적 특성 -최정여 교수의 「사원잡희 ‘삼회향’(속칭 땅설법)」 논문에 기하여->, 《한국음악문화연구》 3, 2011; 최헌, <영남지역의 삼회향>, 《한국음악문화연구》 12, 2018). 즉 땅설법을 온전히 삼회향의 이칭으로만 취급하였던바, 삼회향이란 “재의 끝에 의식에 참가한 스님들과 불자들이 어울려 일종의 여흥 비슷하게 잡가도 부르고 놀이도 하는 의식이다. 재에 참여한 모든 대중들이 회향의식을 벌이는 것을 삼회향이라 하며, 그 내용은 회향의식의 게송과 함께 매우 흥이 나는 재담, 민요, 춤, 놀이 등이 포함된다.”(최헌, 위의 글)고 하였다. 회향(回向)이란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다른 사람이나 자기의 불과(佛果)로 돌려 함께 하는 일을 지칭하는 불교용어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교에서는 흔히 어떤 일이나 사업 또는 행사 등을 마치는 것을 회향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위의 설명에서 재의 끝에 삼회향을 벌인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것이거니와, 특별히 3이라는 숫자가 붙는 것은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이라는 3종류의 회향을 소개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최헌, 위의 글). 최정여가 소개한 삼회향은 개성 연복사 출신의 승려가 전수받은 것을 녹음하여 발표한 것이었으나, 2005년부터 경상남도 창원 백운사에서도 삼회향놀이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12년 충청북도에서는 단양에 소재한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의 삼회향놀이를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하였고 2014년 이와 관련한 학술회의와 시연이 있었다(최헌, 위의 글).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은 모두 삼회향을 가리키는 것이며, 여기에서 땅설법은 삼회향의 이칭으로만 설명되었을 뿐이다.

경내 관통도로 저지 과정서 전승 알려져

땅설법이 삼회향과 분리되는 별도의 독자적 전승이라고 보고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안정사의 땅설법에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안정사는 “3만여 평의 대지에 10여 개의 전각을 갖춘 지역의 주요 사찰 중 하나”로 소개되지만(BTN 뉴스, ‘삼척 안정사 대웅전 옆으로 국도 교각 들어설 예정 ‘신행 위협’’, 2016.8.5.), 사실상 그간 지역사회 밖으로는 크게 알려져 있던 사찰이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안정사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을 맡은 38번 국도의 확장 공사에서 도로의 확장 구간이 안정사의 경내를 통과하도록 계획된 데에서 비롯된다. 대웅전 바로 옆에 고가도로를 지탱할 다리 기둥이 세워지도록 설계되었던 것이다(BTN 뉴스, 위의 기사). 이를 둘러싸고 원주청과 갈등을 빚던 안정사는 교계의 지지 속에서 사외 투쟁에 나서, 전국사찰수호연합회에서 2017년 4월 17일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공사의 삼척 안정사 훼불행위를 규탄하는 한편(법보신문, ‘삼척 안정사, 훼불 자행한 시공사 규탄’, 2017.4.18.), 서울까지 진출하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불교탄압 훼불행위 규탄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천지일보, ‘삼척 안정사 훼불사건, 유례 없는 종교탄압’, 2017.5.15.). 그 투쟁 과정에서 안정사 주지 다여 스님과 신도들이 사찰에서 전승되어 오던 땅설법 일부를 설행한 것이 불교계와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전언이다.

이후 안정사와 다여 스님은 오늘날 거의 사라져버린 것으로 생각되어 온 땅설법의 주요한 계승지/계승자 중 하나로 조명되는 가운데, 2018년 10월 27일 안정사에서 화엄성주대재와 함께 ‘석가모니 일대기’, ‘성주신 일대기’, ‘신중신 일대기’의 땅설법이 교계와 학계의 관심 속에서 약식으로 시연되었고, 올해 3월 30일에는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학자들의 주제발표와 함께 다여 스님의 땅설법 시연이 있었다. 여기에서 발표된 글은 ‘땅설법으로 화엄세계를 아우르다: 땅설법 현장 참관기’(구미래), ‘〔기조강연〕 화엄성중 놀이와 땅설법’(홍윤식), ‘땅설법의 활성화를 위한 시론’(효탄스님), ‘땅설법의 전통과 실상, 그 위상’(사재동), ‘다여스님 땅설법의 연희적 양상’(윤희봉) 등 5편이다.(한국불교민속학회 외, 자료집 《땅설법의 계승과 발전 방안》, 2019.3.30.)

대중에 맞춰 불교문화 교육하는 설법

당시 발표되었던 글과 이번 우란분절(백중절)의 안정사 ‘우란분절 백중법회·목련존자 일대기 땅설법’ 팜플렛 2종에 따르면, “땅설법은 경전과 교리, 의례와 의식 등 불교문화를 참석 대중의 수준에 맞추어 소개·교육하기 위하여 고대의 학습지도법을 적용한 설법의 양식”(소형 팜플렛)으로서, “땅설법 고유의 의식이 있으나 영산재, 수륙재, 생전예수재, 화엄성주대재, 화엄칠성대재 등의 불교의례를 봉행하는 데 있어서는 중단권공 뒤에 설행”하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천상의 화엄성중들에게 《화엄경》을 설하신 뒤에 스님께서 일반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는 법문이라는 의미에서 중단권공 뒤에 설행하고 땅설법이라 명칭”한다고 한다.(대형 팜플렛)

“안정사에 전승되는 땅설법은 크게 ①석가모니 일대기 ②목련존자 일대기 ③성주신 일대기 ④신중신 일대기 ⑤선재동자 구법기 ⑥만석중 득도기의 여섯 가지 주제”(구미래, 위의 글; 대형 팜플렛)이다. 또한 땅설법은 “재회의 신중권공 다음에 이어지므로 의례 성격에 따라 적합한 주제를 설행하게”(구미래, 위의 글) 되는데, 이를테면 석가탄신일이나 영산재 등에는 ‘석가모니 일대기’가, 백중이나 천도재에는 ‘목련존자 일대기’가, 신중기도나 칠성대재 때에는 ‘신중신 일대기’가, 성주대재나 조왕기도 때에는 ‘성주신 일대기’가, 수행을 위한 모임이나 기도의 경우는 ‘선재동자 구법기’가, 그리고 아이, 노인, 부녀들의 신심을 돈독하게 하기 위한 경우에는 ‘만석중 득도기’가 펼쳐지며(소형 팜플렛), “주제마다 여러 마당으로 구성되어 여섯 주제를 완창하려면 보름은 족히 걸린다”(구미래, 위의 글)고 한다.

편안하고 쉬운 방식의 대중교화법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부처님을 대신하는 법문이 아니기에 법사 스님은 불단 앞에 비켜서서 가사 대신 장삼이나 두루마기에 미투리 등을 갖추고, 세속적 흥겨움을 유발하거나 승려의 위의를 흩뜨리지 않아야 하며, 악기 또한 법고나 장구로 제한하고 연주가 아닌 반주에 그치도록 하는 것”(구미래, 위의 글)이라는 점이다. 땅설법의 목적이 보다 편안하고 쉬운 방식의 대중 교화에 있는 것이지, 절대로 대중의 흥을 돋우거나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이번 우란분절에 목련존자 일대기 땅설법을 하기에 앞서 다여 스님 본인도 누누이 강조했던 바이다.

땅설법의 구체적인 절차는 강(講, 강의), 창(唱, 소리), 연(演, 연기)으로 구분된다. 강은 법회를 시작할 때 그날 주제 전반에 대한 줄거리를 강의하는 도강(都講)과 법문 중간 사이사이에 전문적인 심화 내용을 강의하는 간강(間講)으로 나뉘고, 창은 법회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소리로써 이끌어가는 도창(導唱)과 법문 중간 사이사이에 전문적인 소리를 위하여 도창법사 외에 다른 사람이 소리를 구연하는 간창(間唱)으로 나뉘며, 연은 법문의 이해를 돕거나 참석 대중의 동참을 위하여 불교의례, 지역별 국가별 풍속, 연희 등을 법사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 밖에 낮에는 변상도, 밤에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설법의 이해를 돕는다(땅설법의 구체적인 절차는 대형 팜플렛).

악천후 속 “신도와 눈높이 맞추어 연행”

이날의 우란분재와 ‘목련존자 일대기 땅설법’은 폭우가 쏟아지는 악천후 관계로 지붕이 있는 마룻바닥의 전각 안에서 설행되었다. 안정사 땅설법에 관한 여러 글들을 종합해 볼 때 땅설법은 평소 “마당에서 스님은 신도와 나란히 눈높이를 맞추어 연행”(구미래, 위의 글)하는 것이 상례인 듯하지만, 이날은 마루 위 우란분재를 위해 마련된 공양단 앞에서 땅설법도 행해졌고 관람객들은 전각 아래 마당에 거적과 천막을 설치한 채 위치하였다. 하지만 오전 우란분재를 시작하기 전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땅설법은 스님들의(즉 스님들을 위한) 설법이 아니므로 무대의 가운데에 어산(魚山, 범패승) 스님이 아닌 일반 신도들이 위치하는 법이라고 한다.(사찰에서 행해지는 모든 대중공의는 신도들이 알 권리가 있는 법이라는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오후의 땅설법은 공양단 앞 가운데에 어산상(魚山床, 어산상에는 좌우에 꽃병이 놓여져 있는데, 오른쪽의 연꽃은 불보살의 세계를 왼쪽의 작약은 중생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른쪽에 나무로 만든 등신대의 업경(業鏡)과 민간의 신들을 불법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앉힌다는 금보대(일명 소대, 이것은 부처의 반가좌를 상징한다고 한다)와 53불을 상징하는 촛불이 모셔진 공양탑, 그보다 더 왼쪽에 커다란 수레 모양의 경장거(經藏車), 경장거 앞 천장에 걸어 놓은 흰색 종이로 만든 용선(龍船, 망자를 저승으로 실어다주는 배, 공양탑과 경장거와 용선은 오전부터 그 자리에 내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산상의 왼쪽에 목련경의 내용이 설명된 변상도가 세워져 놓인 경거대(經据臺) 등이 설치된 채 시작되었다.

평이한 우리말 설명…무기교 사설

다여 스님은 설단의 원칙, 설치된 기물들의 명칭과 기능, 우란분재 및 땅설법의 유래와 내용과 의미, 무엇보다도 땅설법의 효용이 대중의 불교 이해에 있는 것이며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에 대해 평이한 한국어로 친절히 설명하면서 시작하였으며, 필요할 경우 군데군데 기교가 크게 섞이지 않은 사설조의 창을 곁들이기도 하였다. 평이한 한국어, 매우 자상하고 친절한 설명, 기교가 크게 섞이지 않은 평범한 사설조 등이 모두 땅설법의 특징을 이루는 요인으로서, 일반적인 재의식의 범패(대체로 이것들은 전문성이 높아 일반인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와 크게 차이가 나는 지점으로 파악된다.

이상의 도강이 끝난 뒤 본격적인 도창은 마루 위 왼쪽의 장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쿵더덕쿵덕쿵’ 박자의 장구소리에 맞추어 “이보시오 시주님네, 이 한 말쌈 들어나 보소.”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창은 곧이어 “뿌리 깊은 남근 바람에 아니 뮐세 꽃 좋고 여름 하나니”라는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담으면서 “오늘 날에 3생의 부모 7대 조상님 왕생극락 화락천궁에 나시라고 왕생법인을 설할 적에”로 이어지며 우란분재의 내력 또는 《목련경》의 내용을 설하는 데로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스님은 경거대 위의 변상도를 들어 보이기도 하고, 창을 중단한 채 강을 이어가기도 한다. 전통 소리에 익은 귀는 아니나마 필자가 듣기에도 그다지 기교가 요구되지 않는 쉬운 사설조의 음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비어천가>의 내용이 포함된다는 점이 귀에 박히는 부분이었다.

학자 3인 강의, 소리꾼 창 곁들여

이즈음 어느 순간 스님은 짙푸른 장삼 위에 걸치고 있던 진홍색 가사를 벗고, 머리에는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모자인 ‘송낙립’을 착용하였다.(이날은 더운 날씨로 곧 벗었으나, 땅설법 중에는 이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원칙인 것 같다.) 이후 스님의 강과 창과 연이 진행되는 도중에 심일종, 사재동, 윤광봉 등 3인의 학자에 의한 간강(각각 조상신앙의 의미, 목련설화의 내용과 내력, 경장거의 의미에 관하여 강의)과 목련이 어머니를 애절하게 그리는 효심을 드러내는 노은주 명창의 간창(판소리 심청가 중 효와 관련된 부분의 음률에 《목련경》의 내용을 차용하여 소리함)이 적소에 배치되었으며, 인형극을 차려 놓고 《부모은중경》의 내용 일부를 시연하기도 하였다(신도 중 한 분이 진행). 후반에는 신도들이 업경 앞에 모여 제비뽑기로(업경대 본생처 집기) 사후의 행로를 가늠하며 즐기는 ‘업경대 환생처 놀이’가 길게 진행되었으며, 뒤이어 여러 명의 장정이 경장거를 들고 정진돌기를 하는(이 날은 기후상의 이유로 전각 안에서 마루 위를 오가는 정도로 그침) ‘《정토삼부경》 경장거 돌기’를 정점으로 하고, 이후 관음시식, 봉송회향, 대중공의 등의 절차로 땅설법을 마쳤다.

안정사의 땅설법은 이제 막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단계이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까지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기존의 땅설법(사실은 삼회향 관련) 연구들은 그것의 연희적, 공연문화적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으며, 특히 그 연원을 고대의 제천의례, 고려시대 불교의 팔관회와 연등회, 무속과 같은 민속신앙 등에서 구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다.(이보형, 위의 글; 최헌, 위의 글; 김창숙(효탄), <불교적 연희의 개최와 그 양상 -연등회·팔관회를 중심으로 삼회향놀이의 연원을 찾아서->. 《한국불교학》 38, 2004 ; 표정옥, <불교 축제가 현대 사회에 함의하는 문화기호학적 의미와 대중성 고찰 -<연등회> <연꽃축제> <삼회향놀이>에 나타난 이미지의 의미작용과 신화성을 중심으로-. 《선문화연구》 6, 2009 등 참조.) 물론 사찰에서 대중적 연희가 이루어지며 사찰이 일종의 공연문화장으로서의 성격을 가졌던 것은 중국과 한국의 전통시대에 실재했던 일임이 다수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으며(조명화·이현정, <중국 사묘 연극의 기능에 관한 고찰>, 《중국문화》 46, 2006; 최윤영, <한국 중세 사원누정의 연행 시·공간>, 《공연문화연구》 13, 2006), 그보다 더 오랜 중세 이전부터 강·창·연 등을 시행하던 승려와 그 설행 양상에 대해서도 《고승전》이나 《입당구법순례행기》 등에 기록이 남아 있는 편이다(구미래, 위의 글; 홍윤식, 위의 글). 그 연원 또한 단순히 전통시대의 불교의례나 민속신앙의 흔적을 넘어 판소리나 사당패 등의 유랑예인집단에서 구할만한 근거가 있다(전경욱,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와 유랑예인집단>, 《공연문화연구》 20, 2012). 그 모두가 학문적 가능성의 지평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다여 스님이 강조한바 “절대로 대중의 흥을 돋우거나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안정사 땅설법의 취지 또한 귀담아 들어야 할 줄로 믿는다. 안정사의 땅설법과 그 취지만이 오로지 기준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양성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다.

다른 지역 땅설법 있었을 수도

어느 곳에서는 땅설법이 삼회향과 동일시되기도 하였을 것이고, 그와 관련하여 또 어느 곳에서는 땅설법과 같은 것으로 이야기된 삼회향이 정말로 ‘놀이’와 ‘연희’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정사에서는 어떤 시간과 어떤 경험을 거쳐 현재와 같은 불교교리 지향적인 지취와 풍모를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안정사의 땅설법은 영동 삼척 지역의 소리가락을 지니지만, 영남이나 영서 또는 경기나 호남 등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소리의 땅설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고승전》이나 《입당구법순례행기》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어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와중에 더러는 타 문화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전하는 것이 안정사의 땅설법인 것이며, 우리는 우선 그것을 중심으로 땅설법을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종교와 문화는 민중과 함께 하는 방향으로‘도’ 발전하기 마련이며, 그것은 그 땅의 민속과 민중문화 속에 내재된 고유한 문화양식의 ‘투과’를 거쳐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다양화되리라는 사실이다.

민순의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 글의 원본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발행하는 소식지 <종교문화 다시 읽기> 제588호(2019년 8월 20일)에 실린 <한종연 특별 종교문화탐방 ‘삼척 안정사 <땅설법>’ 참관 보고>입니다. 필자에게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