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마을은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 작은 창가에 마지막 장맛비가 내린다. 방수팩에 카메라를 넣고 우비를 갖추어 입고 산행에 나선다. 지난밤의 뜨거운 열기와 비가 만나니 그야말로 한증막 같다. 그래도 비가 온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해하며 늘 그래왔던 대로 숲속의 벗들을 만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책로에 다다르자 산으로부터 많은 양의 빗물이 흘러 내려왔다.

황토빛의 크고 작은 물길이 계단 이곳저곳으로 흐르다보니 큰비가 오게 되면 성미산은 토양의 유실이 심하다. 보다 못해 나뭇가지로 땅을 긁어 물줄기를 숲쪽으로 내어 준다.

▲ 어린 딱새의 산책.

옹달샘에 이르러 주변 상황을 보았다. 빗물저금통은 만수위가 되었고 옹달샘도 빗물로 가득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깔아놓은 돌들 사이사이로 아주 작은 물길이 만들어졌다. 작은 낙엽과 산 흙 그리고 돌이 어우러져 중간 중간에 물이 고였다가 넘쳐흐르기를 반복했다. 자연스레 계곡바닥에는 물이 흡수되는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시 장소를 이동하여 건천수가 흐르는 39번 가로등 계곡에 가보았다.

물소리가 졸졸졸 하고 제법 흘렀다. 아주 작은 물안개도 피어올랐다. 간간히 들려오는 박새소리까지 더해져서 산다운 정취가 느껴졌다. 여름 성미산의 물줄기는 비가 많이 내리는 당일로부터 최대 3일까지만 만날 수 있다. 6월부터 8월 초까지 대략 네 번 정도를 볼 수 있는데 강수량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산에 물이 흐른다는 것은 그곳의 동식물에게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메마른 도시의 산이 비를 만나서 부족했던 물을 공급 받아 수많은 동식물을 키워내야 하니 얼마나 산은 힘들고 고달플까?

현재 성미산에서는 작은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건천수 및 물줄기 찾기, 빗물저금통의 효율성, 우리 꽃의 성장환경, 옹달샘 주변 바닥 돌의 온도변화 등을 관찰하고 있다. 산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우공이산처럼 돌 하나씩 놓아 계곡 만드는 중

장마가 드디어 끝나고 맹렬한 햇살이 도시를 열섬으로 만들어 놓은 8월의 첫날, 나는 평소에 확인해보고 싶었던 숲과 도심의 지표 온도를 재보기로 하였다. 숲의 바닥면과 마을길의 바닥면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장소는 성미산 초입에 있는 사찰 앞 길가와 옹달샘 주변 돌 바닥면으로 정했다. 사람과 차가 통행하는 사찰 앞 길가는 아스콘으로 포장되어서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감이 상당하다. 반면 옹달샘 주변 돌바닥은 숲속에 있고 빗물저금통으로부터 지속적인 물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시원한 편이다.

사찰 쪽 길가 지표면 온도는 46.6도, 옹달샘 주변 지표면 온도는 21.1도로 온도의 편차는 무려 25.5도였다. 얼굴이 익을 만큼 뜨거운 포장된 길의 열감이 숲속 옹달샘이 있는 곳으로 가니 청량함 마저 들 정도로 시원하였다. 그리고 옹달샘 주변 지표면으로부터 1미터 이상의 공간을 측정한 온도는 30도 가까이 되었는데 지표면의 온도와 1미터 공간의 온도 차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다른 곳보다 활발하였다. 숲이 있고, 물이 있고, 물을 머금은 돌이 있어서 그 주변의 곤충과 식물이 숲 밖에 있는 사찰 길가의 동식물군보다 여름 열기의 피로도 면에서 여유로움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옹달샘으로 올라가는 초입의 공간은 넓고 옹달샘 위쪽의 산 정상 부근의 계곡은 좁다. 마치 제트기 엔진 모양과 같아서 아래쪽에서 바람이 들어오면 수분을 머금은 돌바닥을 지나면서 공기가 냉각되어 시원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오대산 월정사 앞 계곡에 가면 숲 사이로 제법 넓은 암반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상류로 갈수록 협곡이 되며 물소리도 우렁차며 공기는 한층 시원해진다.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 참 좋은 장소인데 계속 노력하면 성미산 계곡도 시원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우공이산’처럼 나는 돌 한 개, 두 개 모아서 조금씩 시원한 계곡을 만들어가고 있다.

▲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딱새.

깊어가는 여름빛의 산자락

깡충깡충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아니면 어설프게 나는 건지 산자락 축대 위 조그만 새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무언가 엉성해 보였다. 더위에 지쳤는지 아니면 건강상태가 안 좋은 건지 싶어서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보니 성미산 초입에 있는 어린이집 옥상에서 올봄에 태어난 어린딱새였다. 신이 난 듯 아니면 세상을 관찰하듯 이리저리 살피며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조금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며 카메라 앵글에 딱새를 담았다. 어느 순간 그 딱새를 알 것 같았다.

지난 늦은 봄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인근 어린이집 원장이 새끼 새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직접 키워보겠다고 하며 사진을 보냈는데 딱새였다. 잠시 읽던 책을 덮고 산 너머 어린이집으로 갔다. 실제 보니 너무 여린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냥 두면 산고양이나 육식성 때까치, 파랑새 또는 새호리기에게 잡혀갈 것이고 둥지는 어린이집 옥상 난간 아래 물받이 통에 있어 올려주자니 손이 닿지 않았다. 그때 어미 새가 공격과 경고의 몸짓을 했다. 결국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둥지에 새끼를 넣어주었다. 딱새부부는 당시 4마리의 새끼를 부화 시켰다.

그리고 두 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어린이집 인근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감정이 교차하였다.

숲에 사는 동식물과 교감하는 것이야말로 나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알아가는 공부가 된다. 작은 산 성미산이 내겐 점점 큰 산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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