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범해 스님)가 '고불총림 백양사'를 총림에서 해제했다. 현재 방장인 지선 스님은 방장 직을 자동으로 잃게 됐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범해 스님)가 고불총림 지정 해제를 결의했다. 11월 6일 오후 속개된 제217회 정기회 본회의에서 종회는 의사일정을 변경해 도심 스님 외 23인이 발의한 ‘고불총림 지정 해제’ 안건을 상정해 만장일치 동의를 거수로 표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고불총림 지정 해제’를 결의했다. 일부 종회의원들은 만장일치 동의에 손을 들지 않았다.

중앙종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속개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고불총림 지정해제의 건, 총림제도 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 등을 추가 안건으로 상정하고, 고불총림 지정 해제의 건을 먼저 다뤘다.

종회는 고불총림 지정 해제 이유로 △고불총림이 총림법이 규정한 총림 구성 요건을 현저히 갖추지 못했다는 점 △제120회 중앙종회에서 고불총림 지정 당시 서옹 스님 생존 시에만 총림을 인정하기로 조건부 지정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조계종 기관지에 따르면 ‘고불총림 지정 해제’의 건을 긴급 발의한 도심 스님은 “조건부 총림으로 지정된 백양사는 서옹 스님 열반으로 사실상 총림으로서의 자격을 이미 상실했고 조건부 지정이지만 그동안 백양사가 총림다운 실질적 요건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상황이 악화돼 왔다”며 “총림 구성 요건인 승가대학원은 학인 수가 현저히 모자란 상태에서 사실상 운영이 잘 안 되고 있고, 그마저 템플스테이 건물 밖으로 이전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율학승가대학원과 염불원은 없는 실정으로 백양사는 이미 총림으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상실했다”며 “지난 11년 동안 5명의 주지가 바뀌면서 단 한 번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등 오히려 총림 유지가 본사 발전과 대중 화합을 저해하는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중앙종회의원은 ‘고불총림 지정 해제’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범 스님은 “총림 해제는 성급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학인 수 감소 등 구체적 총림 구성 요건 미비 등을 다시 심사숙고할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종회는 ‘고불총림 백양사’ 지정 해제의 건과 총림 제도개선 특위 구성 안건을 긴급 발의했다. 중앙종회 의사일정을 논의하던 연석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제127회 정기회 개원일인 5일 본회의에서 확정된 의사일정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안건이다.

총림 지정 해제는 △총림을 구성하는 선원, 강원(승가대학 또는 승가대학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염불원 중 2개 이상이 사실상 운영되지 아니하여 1년 이상 결과하였을 때 △방장 부재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었을 때 △총림이 소재한 교구의 산중총회의 결의로 총림 해제를 요청한 때 △기타 총림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총무원장이 총림 지정 해제를 중앙종회에 제청해야 한다. 다만 총무원장이 이런 사유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총림지정 해제를 제청하지 않을 경우 본회의 의결로 총림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고 <총림법>은 규정하고 있다. 이번 고불총림 지정 해제는 총무원장이 제청하지 않고 중앙종회 의원들이 긴급 발의로 이뤄졌다.

▲ 총림실사특위가 지난 7월 31일자로 낸 총림실사 보고서는 '고불총림 백양사의 총림 구성요건 적정성'과 관련해 "선원, 중관유식승가대학원, 율학승가대학원 운영으로 총림 유지 조건 충족"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종회는 총림 가운데 가장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고불총림을 총림에서 해제 결의했다. 총림 실사 보고서 중 '고불총림 백양사 실사 보고서' 일부.

고불총림 백양사가 종합수도도량으로 총림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된 지정 해제 요청 이유이다. 하지만 8개 총림 가운데 승가대학, 선원, 율원, 염불원을 모두 운영하는 곳은 영축총림 통도사뿐이다. 영축총림 외에 쌍계총림이 선원, 승가대학, 율원을 운영하고 있고, 염불원은 설립해 강사진을 모두 구성했지만 학인이 없는 상태고, 나머지 총림은 대부분 염불원이 없다.

고불총림은 선원과 중관유식대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율학승가대학원을 용흥사에 두고 운영 중이다. 용흥사의 율학승가대학원은 2019년도 종강 후 총림 내 청류암으로 이전키로 돼 있었다. 학인수가 부족한 것 역시 고불총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인 수만 보면 덕숭총림 수덕사 승가대학은 1~4학년 통틀어 9명에 불과하다.

‘고불총림 지정해제’ 안건을 제출한 도심 스님은 총림실사특위 간사로, 지난 7월 15일 고불총림 백양사를 직접 실사했다.

실사 후 작성된 보고서에는 “총림 유지 조건을 충족했고, 임회 구성과 운영도 적정했다”고 적었지만, 제217회 정기회 본회의에 긴급안건으로 발의된 것이다. 가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총림으로 고불총림을 지목하고 지정 해제 요청과 총림 제도 개선을 위한 특위 구성도 제안했다지만, ‘고불총림’이 지정해제 대상으로 꼽힌 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총림특위는 고불총림에 대해 “중관유식승가대학원 전문과정 학인수로 9명이 보고됐지만, 실제 상주학인은 6명으로 확인됐고, 율학승가대학원 전문 과정 학인수로 11명이 보고됐지만 실제 학인 수는 4명이었다.”고 실사보고서에 적었다. 정원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승가대학(또는 대학원)의 학인 수가 정원에 미달하는 것은 덕숭총림 수덕사의 승가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총림실사특위 보고서에 따르면 덕숭총림의 승가대학 학인 수는 정원 40명 중 9명에 불과했다. 최소 지원기준 20명을 충족하지 못해 교육원의 상주교수연구비를 지원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축총림 통도사와 해인총림 해인사를 제외한 6개 총림 모두 승가대학(또는 승가대학원)이 정원 미달 상태이다.

또 총림실사특위는 보고서에 ‘교육기관별 학인 현황에는 팔공총림 동화사의 경우 한문불전승가대학원(개방형)과 고불총림 백양사의 중관유식승가대학원을 승가대학(또는 승가대학원)으로 인정하면서도 고불총림의 율학승가대학원이 용흥사에 있다는 이유로 율원(또는 율학승가대학원)이 없는 것으로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고불총림 실사보고 부분에서는 “총림 구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적었다. 때문에 특위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위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림의 승가대학(또는 승가대학원)의 학인 수가 부족한 것은 고불총림이나 덕숭총림 만의 문제는 아니다. 총림실사특위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총림이 “출가자 감소에 따른 학인 모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가자 감소는 종단적 차원에서 큰 문제로 여겨진다. 미래불교를 이끌 인재 양성에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게 출가자 감소이다.

하지만 특위는 “출가자 감소에 따른 대안은 종단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출가자 확보는 사찰의 역할”이라며 “(총림이) 출가자 확보 방안을 위한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총림에 출가자 감소 대책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오락가락한 총림 실사보고서

총림실사특위가 총림실사를 마치고 보고서까지 작성해 지난 9월 열린 제216회 임시회에 보고했을 때 ‘총림 지정 해제’ 안건은 제출되지 않았다. 지난 9월 제216회 임시회 때를 기준으로 보면 조계총림 송광사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보성 스님 입적 후 1년 이상 방장을 추천하지 못해 방장 부재 사태가 이어질 때였다. 그런데도 특위는 조계총림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출가자 감소로 인한 학인 수 부족 사태 보다 해결 가능한 방장 부재 사태를 지켜만 본 것이다.

때문에 ‘강남원장’이 원하는 백양사 차기 주지를 선출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갑작스런 고불총림 지정 해제 안건이 본회의에 긴급발의된 것이 총림 가운데 가장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진짜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함수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중앙종회가 고불총림 지정 해제를 결의해 지선 스님은 방장 직을 타의에 의해 잃게 됐다. 지선 스님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 현 주지 토진 스님은 방장 지선 스님의 추천으로 2016년 4월 5일 임명됐다. 총림 지정 해제가 본사주지 임기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

<총림법>은 “총림 주지 자격은 교구본사주지 자격에 준하며 임기는 4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림 지정이 해제됐을 때 본사주지 자격이 유지되는 지 여부는 종법에 규정이 없다. 고불총림 백양사가 총림 지정이 해제되면 총림법이 아닌 산중총회법에 의해 본사주지를 선출해야 한다. <산중총회법>은 본사주지 임기만료일 50일 내지 30일이 달한 때 산중총회를 열어 본사주지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다만 <산중총회법>은 총림 방장 또는 교구본사 주지가 궐위된 때는 산중총회를 소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림 지정이 해제될 경우 본사주지의 임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르면 올해 안에 백양사는 주지 후보자를 선출할 수도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47년 만암 스님이 고불총림을 개창한 것이 근원이다. 만암 스님의 고불총림은 한국전쟁으로 안타깝게도 소실됐지만, 1980년 이래 복원을 시작해 1996년엔 서옹 스님 생존 시 조계종 ‘5대 총림’의 한 곳으로 지정됐다. 중앙종회는 총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고불총림이 서옹 스님 생존 시에만 총림으로 지정하기로 했다는 ‘조건부 지정’론을 들고 나왔었다.

고불총림 백양사가 중앙종회 결의에 어떤 입장을 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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