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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것과 어리석은 것은 종이 한 장 차이

기사승인 2019.11.08  15: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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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어느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

절 아랫마을에 식당을 하는 맘 좋은 보살이 있었다. 이 보살은 보증을 서거나 꿔준 돈을 못 받아 늘 형편이 어려웠다. 그 보살의 친구가 보살을 데리고 절에 왔다.

“스님, 이 친구는 맘이 너무 착해 늘 당해요.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또 돈을 꿔주고 못 받고 합니다.”

스님이 그를 쳐다보고 말했다.

“보살, 당신은 착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거요. 불교에서는 어리석은 걸 ‘치(恥)’라고 하는데 당신은 ‘치인’입니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버니’(2011. 미국.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여기 정말 법 없어도 살만한 사람, 버니가 있다.

버니는 미국 텍사스 주의 작은 마을로 와서 장례사를 하게 된다. 장례사이지만 버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죽은 이의 남은 가족을 성심을 다해 위로하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세무상담부터 시작해 실력 있는 성가대원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뮤지컬 기획자로 마을주민들의 문화생활을 돕는다. 다재다능한 그를 사람들은 ‘천사’라고 하며 아낀다.

그러던 중 갑부인 남편이 죽고 미망인이 된 마조리에게 버니가, 늘 그렇듯 친절하게 대한다. 그녀를 걱정해 자주 찾아가고 선물도 한다. 너무나 괴팍해서 가족들과도 인연을 끊고 사는 마조리는 처음엔 버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계속된 친절에 결국 마음을 연다. 둘은 세계를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듯 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평등한 소통을 해보지 않은 돈 많은 미망인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버니에게 재산상속을 법적으로 공증해놓지만 그것와 함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관하고 하인처럼 부린다.

또 힘없는 일꾼을 모함해 해고하고 마당을 파놓는 들짐승을 총으로 쏘라고 버니를 닦달한다. 마음약한 버니는 마조리를 타일러보고 애원도 해보지만 마조리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한다. 결국 버니는 들짐승을 쏘라고 준 총으로 마조리를 살해한다. 그러고 9개월 간 마조리를 대신해 그의 재산을 마을사람들을 위해 쓴다. 교회나 마을의 소녀 생일선물, 지역의 상점 등에 아낌없이 쓴다. 하지만 마조리의 오랜 부재에 찾아 나선 이들에 의해 그녀 집의 냉동고에서 시체를 찾게 되고 버니는 즉각 체포된다.

마을사람들은 버니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태로는 배심원이 전원 버니의 편을 들지 모른다는 판단으로 검사는 이웃마을로 옮겨 재판을 한다. 재판장에서 버니는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다 했지만 배심원 전원 판결로 유죄. 종신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버니를 사랑한다며 열심히 면회를 다니고 구명을 위해 애쓴다.

영화 <버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버니는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요리반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며 즐겁게 생활했다고 영화 말미에서 나온다.

관객에 따라 이 영화를 어떤 주제로 볼지, 무척 스팩트럼이 넓을 것 같다. 버니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 인지를 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을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버니의 살인을 무죄로 주장하는 ‘집단 광기’에 대해 지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코미디 배우인 잭 블랙을 주인공으로 써서 영화를 가벼운 분위기로 만든 감독은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듯하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쓴, 착한 버니는 왜 사람을 죽이게 된 걸까.

‘페어웰, 마이 퀸’(2012. 프랑스. 브느와 자코 감독)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거나 대지를 느끼고 싶다며 소젖을 직접 짜겠다고 외양간을 지으라고 명령한 마리 앙투아네트, 후세의 사람들은 다양하게 그를 조명했다. 그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련한 많은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는 왕비의 하녀가 주인공이고 하녀의 눈에 비친 왕비와 혁명의 나흘간을 그렸다.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책을 읽어주는 하녀 시도니는 왕비를 너무나 사랑한다. 왕비는 그에게 관심도 없지만 그는 왕비에게 충성을 다하며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왕비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를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여왕은 변덕스럽고 사치스러움, 그리고 이미 혁명군이 왕실과 귀족을 상대로 작성한 살생부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첫 번째로 올라가있는 것을 보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등 다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왕비 자신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녀인 시도니의 눈에 비친, 그러니까 한 인물을 비판이나 이해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려는 이를 따라가며 그렸다.

영화에 크게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마지막 한 사람은 폴리냑 공작의 부인인 가브리엘 폴리냑이다. 실제 초상화에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아있다는 가브리엘을 영화에서는 왕비가 사랑한 이로 묘사하고 있다. 왕비는 자신이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가브리엘이라도 변장시켜 외국으로 피신시키려고 했다. 시도니에게 화려한 왕족의 드레스를 입혀 가브리엘인 것처럼 하고 가브리엘에게는 하녀로 변장하게 한다.

성난 혁명군에게 잡히면 시도니는 당연히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하녀로서 시도니는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게 왕비를 사랑한 시도니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당연한 길에 가브리엘을 대신하며 영화가 끝난다.

그저 한 사람을 이유 없이 좋아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않은 인물은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얻게 됐다.

불자는 자신이 스스로 등대이자 등불인 사람들이다. 삶의 주인공이지 누군가를 떠받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내내 가슴에 새기고 살면서 누구와도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 어리석은 ‘치인’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이 올바른 견해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아할 것이다.

박정미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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