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이 선학원 설립조사 초부 적음(草夫 寂音, 1900~1961) 스님이 무불 성관(無佛 性觀, 1907~1984) 스님에게 써 준 글이다. 오른쪽은 고봉 경욱(古峰 景昱, 1890~1961)이 쓴 글. 사진 제공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 조사 중 한 분이자 제3대, 제5대 이사장을 역임한 초부 적음(草夫 寂音, 1900~1961)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에서 무불 성관(無佛 性觀, 1907~1984) 스님에게 써준 친필이 공개됐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법응 스님은 무불 스님이 1936년을 전후해 전국 각지를 만행할 때 방문한 사찰에서 받은 직인과 참배 확인 고무도장(스탬프), 당대 고승으로부터 받은 시문과 그림, 경성 5대 백화점 고무도장 등을 모은 《집인첩(集印帖)》을 입수, 1월 7일 공개했다. 이 《집인첩》은 앞뒤 26면, 총 52면의 수진 접철본으로, 지난해 12월 코베이옥션에 출품된 것을 법응 스님이 구입한 것이다.

▲ 초부 적음 스님.

《집인첩》에 찍힌 고무도장으로 미루어 무불 스님은 1939년(소화 14년) 8월 9일 금강산 마하연을 참배하고, 초부 스님에게 글씨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초부 스님은 무불 스님에게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가 하늘과 땅에 통하니 고금에 밟은 이 드물구나〔金剛秀色通天地踏破古今不見人〕.’라는 글귀를 적어 주었다.

직지사에서 불가와 인연을 맺은 초부 스님은 3·1운동을 겪으며 조국의 실상에 눈 뜨고 전법구생의 서원을 세웠다. 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서무부 이사 소임을 맡았고, 이태 뒤 직지사 제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설립을 인가하자 상무이사를 맡아 선학원이 재정적으로 자립하는데 일조했다. 같은 해 조선불교선종 종헌을 제정하는데도 참여해 총무부장에 취임하는 등 선학원의 재정자립과 민족불교 전통 수호에 힘썼다. 1941년에는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회복·계승하기 위해 개최된 유교법회에 동참했으며, 같은 해 범행단(梵行團)을 결성해 청정비구승단의 기초를 닦았다.

스님은 선학원 소임을 보면서도 묘향산 상원암(上院庵) 등지에서 부단히 정진에 힘썼는데, 무불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에서 스님에게 글씨를 받은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정진했을 것으로 보인다.

《집인첩》에는 초부 적음 스님 외에도 고봉 경욱(古峰 景昱, 1890~1961), 만응(卍應) 스님 등 고승의 친필이 포함돼 있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법응 스님은 “선학원 발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초부 스님, 그리고 고봉 스님의 친필은 매우 희소한 바 본 집인첩의 단문은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만응 스님에 대해서는 인적 자료를 발견치 못했다”며, “전문가의 연구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이중 보현사 고무도장은 세 종류가 수록됐는데,“다른 집인첩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라는 평가다.

직인이 수록된 금강대본산유점본말사평양포교소는 대륜 세영(大輪 世榮, 1884~1979) 스님이 1915년 5월 평양 창전리 159번지에 창건한 포교당이다. 대륜 스님은 선학원 설립조사인 만해 스님의 항일운동과 불교유신운동에 뜻을 같이 해 적극 후원했고, 해외 독립투사에게 군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집인첩》에는 사찰과 문화유산 외에도 일제 강점기 경성 4대 백화점으로 꼽힌 조지아(丁子屋), 미스코시(三越), 미카나이(三中正), 히라다(平田), 화신(和信) 등 여러 백화점의 고무도장도 찍혀 있다. 이로 비추어 당시 서울에서 포교하던 무불 스님이 각 백화점을 둘러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법응 스님은 “무불 스님이 전국을 만행한 1936년 무렵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앞두고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황국신민화 정책을 본격화한 때”라며, “무불 스님의 《집인첩》은 당시 식민지배 세력이 힘을 과시했던 경성의 여러 백화점 고무도장이 찍혀 있는 등 일제 강점기 불교계의 단면과 시대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처럼 다양한 직인과 도장을 엮은 집인첩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집인첩》을 엮은 무불 스님은 근대의 선지식이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금강산, 묘향산, 평양을 비롯한 북한지역은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을 다니며 교학과 포교에 전념했다. 1984년 3월 27일 부산 금용암에서 봉행된 장례식에서는 광덕 스님이 봉송문을 직접 지어 스님을 찬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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