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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부처님 그리는 게 내 수행

기사승인 2020.01.13  11: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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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신진환 화백

   
 

신진환 화백은 무형문화재 118호 임석환 불화장의 이수자다.

주요 작품으로는 강화 전등사 명부전, 수덕사 환희대 원통보전, 서울 진관사 명부전, 경기도 만의사와 청운사 등의 불화를 비롯해 경기도 약천사, 순천 선암사 등의 괘불 등이 있다. 또한 금강사 신계사 복원작업에 참가해 벽화를 조성하기도 했다.

상주에서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형이 살던 대전으로 와서 사찰의 단청 일을 하던 그는 임석환 선생이 벽화작업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시골 어르신들이 불화를 보면, 저건 사람이 그린 게 아니라고 했어요. 나도 눈앞에서 임석환 선생님이 그리는 걸 보니 사람의 일이 아닌 것처럼 경외감이 들면서 꼭 배우고 싶었습니다.”

부처님을 잘 그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는 단청 일을 그만 두고 임 불화장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작업실이 없고 제자라고는 자신 혼자였던 때라 작업현장을 따라 다니며 심부름을 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도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않았고,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점점 커졌다.

한참 후에 스승이 인사동에 작업실을 낸 뒤, 기초부터 배웠다.

시왕초, 보살초, 사천왕초를 각각 3천 장 씩 그렸고 5백 나한을 5번 그렸으니 2500분의 나한을 그린 셈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초(草) 그린다. 손이 굳지 않게 하려면 40여년을 그려온 백전노장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작업이라고 한다.

스무살부터 부처님을 그린다며 쫓아다녔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직업’이었지 별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그리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불법이 시들지 않고 세세손손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자신에게 밥과 잠자리를 주시는 부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禮)를 따로 생각하다 어느 순간 한 가지로 접목이 됐다.

집에 작은 소품이라도 부처님을 걸어놓고 가족끼리 그 앞에서 오순도순 즐거운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이 든 이들은 절에 와서 부처님을 보지만 젊은이나 아이들은 절에 잘 안 오니까 집에 부담 없고 보기 좋은 부처님 그림을 걸어놓으면 딱 좋겠구나 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부처님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게 ‘매일 부처님’이다.

“부처님 밥을 먹는 입장에서 공밥은 안 먹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늘 있지요. 매일 부처님을 그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처음에는 108배를 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점차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그림만 그리게 됐어요.”

‘매일’이란 ‘하루도 빠짐없이’다. 그는 사찰의 벽화를 작업하러 가서도, 외국에 나가서도 매일 부처님을 그린다. 하루에 끝나야 하니까 작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점점 아이처럼 천진한 그림이 됐고, 현대적인 그림이 되어갔다.

자신과의 약속 지키려 ‘매일 부처님’

2018년 미얀마의 선원에서 10일 단기출가를 하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부처님을 그렸다. 처음으로 삭발하고 법복을 입고 출가자로 생활해본 것이 굉장히 뜻 깊었고 큰 복이라고 생각했단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의 ‘담마 따미’라는 법명은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마침 단기출가 기간에 선원에서 탑 점안식을 해서, 그는 거기서 그린 매일 부처님을 복장유물로 드렸다. 미얀마 스님들이 참 좋아하셨다.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 묻는 질문에 “나 자신과 한 약속을 못 지키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부처님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전생에 뭔 인연이 있었는지….”라고 덧붙였다.

어떤 걸 그릴지 미리 예상하지 않는데 일단 붓을 잡으면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저 붓을 들고 점 하나 찍으면 그날그날 붓이 손길을 끌고, 부처님이 스스로 걸어 나오신다는 거다. 손바닥만한 종이에 등장한 부처님은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어느 날은 발랄하고, 어느 날은 슬픈 눈빛, 기괴한 모습을 하기도 한다. 여러 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단청을 옮겨놓은 오방색의 추상 문양이기도 하고, 흑백의 판화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의 소재나 동·서양화의 구분, 구상·비구상의 구분, 재료로 변별되는 구분도 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사불(沙弗)수행으로 생각하고 매일 붓을 잡는다.

   
 

그는 지난 2019년 12월 18일부터 24일까지 갤러리 이즈에서 〈미륵의 은하로켓〉이라는 개인전시회를 했다. 이번 전시회는 ‘매일 부처님’과 함께, 탑 모양의 로케트에 연꽃 봉우리를 공작의 꼬리처럼 우아하게 단 채 우주로 날아가는 깡통로봇이 등장한다.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 ‘미륵’이다. 요즘 유행하는 ‘팝아트’ 경향의 이 그림이 가장 정형화 된 그림을 그리는 불화장 이수자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젊고 자유로운 사고가 있기에 가능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부처님’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일 올린다. 그의 그림에 매일 댓글을 다는, 날카롭고 짧은 평을 남기는 이가 있다. ‘고려불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재 미술사상가다. 김 박사는 신 화백의 그림을 “구체적인 오브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음으로 시각과 연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차분하면서도 날렵한 분위기가 압권”이라고 평가한다. 또 신 화백 작품의 초월적 세계는 “그간 닦아오면서 고뇌하고 방향을 수정해가면서 정진한 결과에 의해 도출될 것”이라면서, “땀 흘린 과정과 결과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분명 화면의 무관심성에서 비롯”한 것이며 “다분히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한켠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브라질에서 온 외국인 관람객을 만났다. 자신들은 종교도 다르고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몇몇 그림에서 깊은 공감을 한다며 관심을 보였다.

신 화백은 한지에 먹으로 부처님이나 달마를 그리고 있었다. ‘공밥’을 먹지 않기 위해 남는 시간에는 그렇게 작은 그림을 그려 스님이나 불자들에게 보시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도 아미타부처님을 그려줬다.

말보다 그림이 훨씬 편하다는 듯, 밑그림도 없이 쓱쓱 부처님을 그렸다. 왼쪽에는 ‘진심종자(眞心種子)’와 ‘오륜종자(五輪種子)’ 문구는 의성 대곡사 복장 다라니를 복사해서 붙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공자의 말씀 중 ‘강의목눌(剛毅木訥)’, ‘강하고 굳세며 질박하고 어눌한 것이 인(仁)에 가깝다.’는 뜻. 그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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