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출판사|1만 5800원

전국을 다니며 마주한 사람과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스님이라는 권위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나긋한 소리로.

글을 쓴 장산 스님은 2013년 부산에서 설악산까지 53일간 왕복 1300km를 걷고 나서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를 펴낸 적이 있다.

이번 책은 2019년 겨울, 그간 수행의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통해 느낀 것을 50여 편 이야기로 담아냈다. 그 중 연꽃을 보러 갔다가 사진 찍는 도반을 만난 일화를 그린 〈궁남지 연꽃이 필 무렵〉은 월간 《신문예》의 2019년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이다.

책에는 《메밀꽃 필 무렵》 속 정취를 보러 봉평으로 향한 길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걸었을 메밀밭 달빛에 취한 이야기, 가야산 해인사 길목인 홍류동 계곡에서 천 년 전 “천상이 어딘가 했는데 바로 예로구나”라 감탄한 최치원을 떠올리며 진달래의 봄 향연을 즐긴 이야기, 도반을 따라 간 광주의 무등산경기장 야구경기 중 목청껏 관중이 부른 〈목포의 눈물〉 에서 5·18 광주의 분노 등 아물지 않은 아픔을 호소하는 느낌을 받은 이야기 등, 소재와 주제가 틀에 묶이지 않고 다양하다.

또, 조치원 성불암 동지 전야제에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놀고 있을 때 총 든 강도가 들어왔는데, 갱엿으로 만든 총이 더운 방에서 녹으면서 총구가 구부러져서 결국 어르신에게 뺨을 맞고 복면을 벗기니 동네 청년이었다는 〈동지팥죽과 성불암 강도 사건〉은 ‘푹’하고 웃음을 터지게 한다.

그런 반면, 해인사에서 만난 해금 들고 밥을 빌러 다니던 ‘앵노’라는 노인이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마음이 부처라 했으니 당신 마음에도 부처님이 계시다”라는 장산 스님 말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팡이를 짚고 가던 뒷모습을 그린 〈가야산 앵금이 이야기〉에는 뭉클한 감동이 있다.

잠 안 오는 밤에 주욱 읽다가 덮으며 미소를 띤 채 잠들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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