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지정이 예고된 ‘구미 대둔사 경장’. 사진 제공 문화재청.

불교공예품으로는 드물게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구미 대둔사 경장(經欌)’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구미 대둔사 경장’과 불화와 복장낭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을 보물로 지정예고하고,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을 보물 제2108호, ‘미륵원명 청동북’을 보물 제2109호,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을 보물 제2110호로 각각 지정했다고 1월 7일 밝혔다.

‘구미 대둔사 경장’은 연화문과 모란문, 두 개의 경장이 한 쌍이다. 경장 자체도 희귀하지만, 불교목공예품 중 명문이 남아있는 예도 드물다. 연화문 경장 뒷면과 밑면에 제작자와 제작 시기 등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다. 명문으로 숭정 3년, 즉 인조 8년(1630)에 인출장인(引出匠人) 충원(忠願)·대유(大裕), 태장인(炲匠人) 김덕운(金德云), 화원 쌍련(雙連)·유혜(裕惠) 등이 경장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연화문과 모란문 경장 문짝 안쪽에 선묘로 사천왕상을 2구씩 그려 있어, 두 경장이 원래 한 쌍으로 제작돼 불단 좌우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구미 대둔사 경장’은 명문으로 제작 시기와 제작 장인을 명확히 알 수 있어 학술·공예사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규모가 크고 조형적으로 우수하며,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의 편년과 도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은 불화와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腹藏囊), 복장낭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됐다. 괘불은 유성(有誠) 스님 등 화승 23명이 참여해 정조 1년(1776)에 조성한, 18세 후반 불화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17, 18세기에 조성된 괘불이 여러 번의 보수 과정에서 원래 모습을 잃은 것과 달리 이 괘불은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본존인 석가여래를 다른 존상보다 돋보이게 표현한 점, 존격에 따라 신체 색을 달리 해 강약을 조절한 점 등 “18세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보물 제2108호로 지정된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현종 4년(1663) 환적당 의천(幻寂堂 義天) 스님이 발원해 조성한 불상으로 조성연대가 확실해 마애불 도상의 기준작이 된다. 보물 제2109호로 지정된 ‘미륵원명 청동북’은 고려 명종 20년(1190) 미륵원에 걸기 위해 제작한 금고(金鼓)이다. 제작 연대와 발원자, 사찰명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고려시대 청동북 제작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보물 제2110호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은 순조 8년(1808) 평삼(評三) 스님 등 화승 18명이 조성한 대형불화다. 18세기 전통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색감, 비례, 인물 표현, 선묘 등에서 19세기 전반기 화풍이 보이는 등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 자료다.

한편, 문화재청은 보물 제1513호 ‘20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를 국보로 지정예고했다. ‘20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는 숙종 6년(1680)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 20년(1694)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어람용 문서이다. 회맹제는 임금이 공신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다. 이 문서에는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인 회맹문,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까지 조선 건국 이후 20종에 이르는 역대 공신과 후손 489명의 명단인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 제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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