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선원의 정규 일과는 이렇습니다. 오전 3시에 일어나 4시 이전에 숙소를 나와야 했습니다. 이때 여자 숙소 출입문은 잠겼습니다. 이 문은 오전 9시가 돼야 열렸습니다. 그 사이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고, 나갔던 사람은 중간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남자 숙소에서는 한 스님이 일일이 방을 찾아다니면서 명상홀로 가라고 독려하는데 여자 숙소는 이렇게 출입문을 통해 통제 했습니다.

난 오전명상시간에 몽땅 빠졌습니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도 이때쯤 잠을 깼습니다. 누워서 옆방 사람들이 명상홀로 가기 위해 씻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숙소가 워낙 조용하기 때문인지 옆방 사람들이 물 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맞은편 방문 소리도 들렸습니다. 인도계 스님이 명상홀로 나가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누워있었습니다.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다들 자습서 펴놓고 공부할 때 혼자서 만화책 읽으면서 느꼈던 마음하고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마하시선원에서 수행하는 동안 한 번도 새벽명상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뭔 고집이냐고요? 왜냐면 난 새벽명상을 나만의 스타일로 했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내 방에 누워서 창밖을 보면서 새소리를 듣고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 나만의 명상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유난히 행복했습니다.

‘나’라는 생각 없이 오직 알아차림만

▲ 내가 묵었던 숙소 벽에 누군가 붙여놓았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새벽이면 생각이 사라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수행을 해오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생소하긴 했는데 창밖을 보고 있거나 소리를 듣고 있는데 나라는 생각 없이 보고 듣는다는 게 알아졌습니다. 오직 알아차림만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무척 놀라웠습니다. 근데 이것도 경계였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부터 사라졌습니다.

마하시선원에 머무는 동안 이 시간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하리라고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데 무슨 선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강렬했기 때문인지 낮 시간에도 알아차림이 잘 됐습니다. 특히 감정조절이 잘 됐습니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평소보다 2배는 높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강렬하게 좋았던 경험이 사라졌지만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지속된다면 더 좋겠지만 내가 천인도 아니고 언제까지 행복한 기분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얻었던 깨달음을 나침판 삼아 현실을 통제했습니다. 이때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각이 멈추면 남는 것은 경험이었습니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까마귀 소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보고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집착할 게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 깨어있음이 별다른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났지만 지금은 그때의 경험을 나침판 삼아 임의로 노력하고 있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던 길에 나침판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후 12시에서 오후 5시 사이, 5시간 동안 오후 명상을 합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난 좌선을 정말 중시했습니다. 특히 하루 중 처음으로 좌선하는 시간은 중요했습니다. 이 시간에 얼마큼 집중이 잘 되는가가 그날 하루의 좌선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간에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아랫배가 일어났다 사라질 때 하나를 세고 그 다음 호흡에서 둘, 이런 식으로 백까지 세었다가 다시 거꾸로 하나로 돌아오는 방식의 수식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위빠사나는 배가 불러오면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꺼지면 ‘사라짐’을 인식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름’하고, 다리가 아프면 ‘아픔’ 하는 식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난 이 수행방식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수식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시간이 행복한 타고난 수행자

처음 이틀 정도는 선풍기 소리와 까마귀 소리 등 온갖 소음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정말 집중이 안 되고, 힘을 많이 쓰느라 머리가 무겁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정도 지나자 집중이 잘됐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도 수식관을 할 때 백까지 세고 다시 거꾸로 세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중간에 잡생각이 떠올랐는데 여기서는 이상할 정도로 수식관이 잘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배의 미세한 호흡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집중력이 굉장히 깊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스스로를 타고난 수행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시간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좌선을 하는 시간도 재미있고, 밖에서 행선을 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물론 행선은 알아차림 보다는 산책에 가까웠지만 여하튼 수행시간이 내겐 힘든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가 저녁 명상으로 이 시간이 끝나면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됩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누우면 9시쯤 됐습니다. 꽉 찬 하루를 보냈다는 만족감이 들었고, 내일도 즐거운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이곳 마하시선원은 수행을 즐기는 사람에겐 천국과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수행자였습니다. 누구의 딸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주부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한 사람의 수행자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말끔하게 비워졌습니다. 한국의 모든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수행밖에 없었습니다. 밥은 다른 사람이 해주고, 혼자 쓰는 방이다보니 청소 안 한다하여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아무 것도 할 게 없었습니다. 신경 쓸 게 없고, 할 일이 없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수행자로서 오직 존재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역할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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