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공덕에도 유루(有漏)와 무루(無漏)가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유루법이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 즉 유한한 법을 일컫습니다. 무루법이란 영겁이 다하도록 변치 않는 것, 즉 무한한 법을 일컫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모두 유루법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없어지므로 유루에 속합니다. 하지만 자성(自性)을 반조(返照)하여 원력을 세원 뒤 남을 위해 자비행을 실천하면 그 공덕은 세세생생 사라지지 않으므로 무루에 속합니다.

《법구경》에는 “여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가난하고 재난을 당하여 고통 받고 병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며, 그렇기 때문에 만일 병든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수행자,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공양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어 무엇이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헐벗고 배고픈 이웃에게 자비행을 펼치는 것만큼 좋은 공덕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비 공덕에도 단서가 따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나 “수많은 절을 짓고 수많은 수행자들을 절에 살게 했습니다. 불법을 펴기 위해 많은 보배로 가득 채웠습니다. 내 공덕은 어느 만큼이나 되겠습니까?”

이 물음에 달마대사는 “공덕이 없습니다. 청정한 지혜의 본체는 원래 비어 있으므로 세상의 유위법으로는 공덕을 구하지 못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불법은 청정한 서원(誓願)이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베푸는 이와 받는 이, 그리고 그 공덕물이 모두 청정했을 때 비로소 참된 공양이 되는 것입니다. 유위법에 의한 시주는 어떤 욕심이 있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정한 서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불법은 유위법이 아닌 무위법입니다. 꽃이 필 때는 꽃이 피고, 꽃이 질 때는 꽃이 지는 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스스로 그러한 것〔如如〕인 바 애써 궁구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달마대사가 양 무제에게 무위법을 설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운 스님 | 본지 발행인·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