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수월도량(宴坐水月道場) 도환화지함식(度幻化之含識) ; 수월도량에 편안히 앉아 환화인 중생을 제도한다’라는 종경(宗鏡) 스님의 글. 여기에 함허(涵虛) 스님은 ‘도량여수월(道場如水月) 연좌자아수(宴坐者阿誰) 함식즉환화(含識卽幻化) 무생가도(無生可度) ; 도량이 수월과 같음이라, 편안히 앉은 자는 누구인가? 중생이 곧 환화라, 중생을 가히 제도함이 없음이요)’라고 한 박자를 더 넣어 아주 맛깔나게 풀이했다.

그렇다. 삼계가 곡두(실제로는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이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고 중생 부처가 모두 허깨비이니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행할 것인가? 그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나 겨울이 되면 그저 쉬는 것도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 몸을 유지하는 데 공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난방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마지막 작별은 스스로 정할 것

안성에 온 첫 해에는 무심코 난방을 하다가 겨울을 보내는데 무려 800L의 기름을 썼다. 그 후에는 500L 수준으로 줄였지만 보일러를 돌리며 종종 ‘이 한 몸이 없으면 저 기름을 쓸 일이 없고 삼시 세끼 음식도 남으니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삶은 소비다. 경제적으로 잘 살수록 소비가 많다. 지구라는 이름의 이 행성은 지금 77억 인구의 무분별한 소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멀지 않아 모두 멸종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100세 인생’이라 하는 그 인생의 끝자락까지 버티어보는 것보다는 웬만큼 살았으면 소비를 멈추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어떻게 소비를 멈출 것인가?

내가 만난 분 중에 일송 정영모 선생이 있다. 내 스승 김기추 거사의 선배이며 절친한 사이로 스승과 일생을 함께 했다. 후배인 스승에게 엎드려 절하며 불법을 배웠고 결국 바른 지견을 얻었다. 말년에 지병인 천식이 심해지자 선생은 문득 결심했다. ‘이제 그만 살자.’ 그리고는 바로 식음을 끊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간 도반에게 선생은 “나 지금 죽어가네. 남칠여구(男七女九)라네. 남자는 칠일, 여자는 구일이면 죽는다네.”라고 말했다. 그렇게 선생은 뜻을 이루었다.

근래 지인들을 만나 이 세상을 사는 의미와 무의미를 말하고 ‘나도 일송 선생의 방법을 따를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방법으로 생을 마친 사람들이 꽤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던 한 도반의 부친도, 유학자(儒學者)였던 고향친구의 할아버지도 이 방법으로 뜻을 이루었다. 지인들은 나를 말린다. ‘우리를 위해 살아있는 것이 좋다’라며 꼬드긴다. 그러나 나의 생존이 이 세상에 이로움이 없다면, 또는 치매 등 큰 병에 걸렸음을 안다면 나는 그 일을 결행할 것이다.

 

자꾸 통장이 없어졌다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통해 치매를 알게 되었다. 특이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어머니의 치매를 의심했고 의사는 그를 확인해 주었다. 2012년 9월, 어머니 연세 89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초기단계를 지났지만 아직은 혼자 지낼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보름마다 어머니 집을 방문해서 둘러보며 하루 밤을 잤다. 치매는 서서히 악화되었다. 어느 가을날 어머니 집에서 돌아온 직후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네가 통장 가져갔니? 통장이 없어졌다."

​도둑맞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숨긴 곳을 잊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다음 방문 시에는 통장을 숨겨둔 곳을 안내 받아 그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 뒤로도 ‘네가 가져갔느냐?’는 전화는 이어졌다. 본래 어머니가 통장을 보관하던 장소는 허름한 광 안이었다. 녹이 슨 분유깡통 안에 통장과 현금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비밀이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그를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안성에 살며 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돈독해졌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그 사실을 털어 놓았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니? 너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치매가 심해지며 통장과 현금 보관 장소가 계속 달라졌다. 신발장으로 장롱으로, 때로는 땔나무가 쌓여있는 곳으로. 누군가가 훔쳐갈지 모른다는 불안과 의심이 일어 보관 장소를 바꾸고 그 장소를 그만 잊어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찾았고 때로는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할 때에는 통장을 재발급 받았다. 이듬해 봄에 나는 스스로 어머니의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그날 통장을 재발급 받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순환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통장과 도장은 내가 간직했고 어머니는 10만 원의 현금만 갖고 계시게 했다. 방문할 때마다 남은 현금을 확인하고 10만 원을 맞추어 드렸다. 큰돈이 나갈 때는 내가 온라인으로 이체했다.

송아지가 된 어머니를 보며

여름이 되었다. 어머니 집 냉장고를 열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고, 엉망이었다. 나는 분당에 살고 있는 누이에게 전화했다.

“이제 혼자 못 사셔. 누군가가 옆에 있든지 아니면 요양원으로 모셔야 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던 ​누이는 바로 달려와 사태의 심각함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누이가 3년을 함께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딸의 정성으로 어머니의 삶의 질은 한결 나아졌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드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못마땅해 했다. 자신을 구박한다고, 왜 집에 안 가고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몰래 말하곤 했다. 어느 날 누이는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글쎄 엄마가 나를 쳐다보며 묻는 거야. ‘아주머니는 누구신데 집에 가지 않고 여기 있어요?’하고.”

가끔 누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누이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이제 송아지야.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인. 어머니는 이제 어머니가 아니야."

나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보며 ‘언러닝(unlearning)’이란 단어를 많이 떠올렸다. 우리는 태어나며 학습(learning)을 시작한다. ‘엄마’, ‘아빠’ 등등의 단어를 시작으로 학습은 일생을 통해 계속된다. 늙으며 기억이 감퇴하지만 그것은 언러닝이라고 할 수 없다. 치매는 체계적인 상실이다. 학습되어 저장되어 있던 지식과 경험의 창고가 매 순간 비워지는 것이다. 마치 도둑이 매일 트럭으로 창고의 물건을 털어 가듯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 창고에는 얼마나 남아 있었을까? 30%? 20%?

언러닝의 결과는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일까? 아니다. 본능과 감정에 지배당하는 동물과 다름없다. 치매에는 미운 치매도 있고 고운 치매도 있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고운 치매였다. 그래서 송아지인 것이다.

송아지로 사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행복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의 정체를 아는, 그 ‘앞소식’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적절한 때에 일송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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