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울고 사람이 울었다. 고산당 혜원 대종사가 천화(遷化)하는 날, 하늘은 사바의 스승을 잃음에 슬퍼했고, 땅의 중생들은 대종사의 덕화가 끊어짐에 울었다.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법구는 평생 수행한 쌍계총림을 뒤로하고 흐드러지다 하늘의 울음에 고개 숙인 벚나무의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따라 도원암 영결식장으로 이운됐고, 영결식 후 국사암에 마련된 연화대에서 사바세계와 마지막 인연을 맺었다.

3월 27일 쌍계총림 쌍계사 도원암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 1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곳곳에 설치된 분무식 소독기와 손 소독을 거쳐야 영결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례위원회는 계단식 주차장에 마련한 영결식장을 세 그룹을 나눠 배치해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했다. 영결식단 앞인 가장 위 주차장에는 원로의원,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의원, 중앙종무기관 교역직 스님들이 2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참석하도록 했다. 이외 출가승들은 중앙 주차장에 거리를 두고 배치된 의자에, 재가신도들은 가장 아래쪽 주차장에 2미터 간격으로 배치된 의자와 주변에서 큰 스님 가는 길을 배웅하도록 했다.

이날 영결식은 쌍계총림 쌍계사에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법구를 영결식장으로 이운하는 것으로 열었다.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과 문도대표 보광 스님 등이 법구를 뒤따라 영결식장에 들어왔고, 원로의원과 총무원장 원행 스님, 교구본사주지 스님 등이 뒤를 따라 영결식장에 입장했다.

도원암에서 울린 명종 5타에 맞춰 시작된 영결식은 동주 스님과 선훈 스님이 영결법요를 치르는 사이 문도대표들이 헌향과 헌화를 올렸다. 범어문도인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 고산당 혜원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수불 스님은 “마음작용은 한바탕 꿈이요,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心行一場夢 息心卽是覺) 꿈과 잠깸이 한결 같은 가운데 마음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夢覺一如中 心光照大千)는 스님의 ‘오도송’은 간절한 정진의 정점이었다.”고 했다.

또 스님은 “‘잠깐도 헛되이 살지 말라’, ‘부지런히 힘쓰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던 스님은 승가의 자립과 승품의 근면함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단과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정진을 하신 고산당 혜원 대종사는 지계와 수학과 정진, 그리고 포교의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의 한 생애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면서 “부처님 마음으로 베풀었던 한 생애를 꽃잎처럼 떨구며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春來萬像生躍動),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秋來收藏待次期). 내 평생 인사가 꿈만 같은데(我於一生幻人事),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今朝收攝歸故里)’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드셨다”고 했다.

고산당 혜원 대종사는 선교율을 모두 통섭한 이사의 경계가 없는 수행자였다. 전계대화상으로 계를 설파했고,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으로 종권분쟁으로 깨진 승가공동체를 화합승가로 회복하는 데 크게 힘을 기울여 종단 안정을 이끌었다. 이날 영결식이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러진 이유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대종사의 입멸에 봄빛 가득한 지리산이 일순간 빛을 잃었고, 하늘조차 대종사의 사바세계 교화인연이 다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원행 스님은 “대종사는 희유의 탁견을 지닌 분으로, 대강백이자 대선사이고, 전계대화상으로 선교율 삼장에 투철한 안목을 갖추셨고, 종문의 의례종장이며, 대가람을 창건하고 중창하며 교화를 펼치는 등 수행력이 수승하기 그지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식촌음(不息寸陰)을 가품으로 스스로 경책하고 대중의 법도를 세움에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으셨다.”며 “영결식이 석가세존의 열반재일에 이루어지는 인연이 석가세존의 유훈과 원효 성사 등 역대 선지식의 고구정녕(苦口丁寧)한 가르친 길을 사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원행 스님은 “황매산 기슭에 매화 꽃피니, 방장산 가득히 매화향이네, 대종사님의 열반 시적을 사훈삼아 쌍계의 시냇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고산당 혜원대종사와의 현생의 인연을 끝맺었다.

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는 영결법어로 “오늘 고산당 혜원대종사 각령 전에 운문 삼전어 진미의 법공양을 올리오니, 잘 받아 간직하시어 역겁에 매(昧)하지 않고 진리의 삼매락(三昧樂)을 누리소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눈먼 사람들이 서로 만나 웃는 곳에 울타리를 붙잡고 담장이라 하니 가히 불쌍하구나”라고 했다. 종정 법어는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 성진 대종사가 대독했다.

원로의장 세민 스님은 “산도 슬픔으로 빛을 잃고 깊은 침묵에 잠겼고, 새들도 길을 잃고 나뭇가지 옮겨 다니며 적멸의 빈자리를 보고 울고, 바람도 서러워 울먹이며 지나간다.”고 했다.

이어 “비롯 생사의 틀을 바꾸어 적명의 깊은 곳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계시더라도 격외의 수단으로 대기대용을 한번 보이십시오”라며 “대중은 인자한 모습으로 이끌어 주시던 진용(眞容)과 법음(法音)을 듣지 못해 슬픔에 잠겼다. 용무생사(用無生死)하신 기용(機用)으로 격외시적(格外示寂)을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

세민 스님은 “이제 자애로운 모습과 대방무외한 선지와 대기대용을 볼 수 없게 되었다.”며 “대중의 비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삼계왕래(三界往來)에 자재(自在)하는 기용으로 사바의 인연을 맺어 이 땅에 다시 불일(佛日)을 밝히시고 조계선풍(曹溪禪風)을 드날리소서”라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백화가 피기 전에 먼저 봄을 알리고 떠나는 매화처럼 춘한 속에 홀로 고고한 자태 펼치시다 만개한 벚꽃을 뒤로하고 가심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수행자의 기상입니까”라며 “종횡무진 이 땅 방방곡곡에서 펼쳐 주시던 그 사자후를 이제 어디에서 들을 수 있습니까. 남자의 본분을 지키라는 추상같이 엄하게 말씀하시던 그 가르침을 이제 들을 수 없는 저희 후학들은 가눌 수 없는 큰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고 흐느꼈다.

정문 스님은 “꿈만 같은 인사를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신 다고 하시니 그 가시는 길을 배웅드려야 하느냐”면서 “저희 후학들과 제자들을 비롯해 사부대중은 아직 스님의 가르침이 필요하여 도저히 보내드리기 어렵습니다.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신다고 하셨으니, 부디 본래의 서원 잊지 마시고 속환사바(速還娑婆) 하시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 주소서”라고 했다.

▲ 국사암 연화대로 법구를 이운하는 스님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경우 스님(선운사 주지)은 “지리산 쌍계에 진여의 보림을 열어 드넓은 회상을 펼치시는 모습 선연한데 티 없는 봄날 아침 홀연히 적멸에 드시니 황망한 슬픔 종문에 가득하다.”며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들어 보이신 등불을 따라 공부와 정진을 이어 가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도록 할 것이니 저희들의 공양을 받아 하루빨리 속환사바 하시어 정법의 길을 열어보여 주시고, 추상같은 어른의 근본을 보여달라.”고 분향 삼배했다.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은 “삼신봉(三神峯) 빛을 감추고 옥천동(玉泉洞) 물소리 잦아드니 조계(曺溪)의 탄식이요 총림(叢林)의 손실”이라며 “삼계유정(三界有情)이 천 길 벼랑에 떨어져 천신만고 겪으니 화개동천의 꽃길 따라 연화장세계로 향하시더라도 머무는 바 없이 총총히 속환사바 하시어 초봄의 어린 초목군생(草木群生)의 안목을 밝혀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직 섬진강 위의 맑은 바람이요, 삼신산 사이의 밝은 달뿐이라. 누가 고산 대종사의 돌아간 곳을 알겠는가. 무쇠소 한 소리에 칡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더라.”라는 게송을 읊어 영결했다.

주윤식 중앙신도회장은 “스님의 열반을 믿기 어려우나 인연 다함을 되돌릴 수 없음에 슬픔을 거두고 전국 모든 중생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한다.”며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 바로 중생을 위한 일’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항상 실천하는 불자가 되겠다.”고 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역시 “지리산과 같이 높고 남해 바다와 같이 너른 뜻을 잘 받들겠다.”며 “스님은 옳은 일에 물러섬이 없었고, 어긋나는 일에는 단호하셨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옳은 길, 바른 길을 가고, 상생과 화합을 화두로 삼아 실천하겠다.”고 추도했다.

문도를 대표해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많은 분들이 조문을 와 주셔서 감사한데 쌍계총림의 가풍을 이어 수행정진함으로써 바른 불교를 이루는 게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문도 모두가 은사 스님의 가르침을 잘 이어 가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법구는 국사암 연화대로 이운됐다. 법구는 스님이 생전 아끼며 인연이 깊었던 쌍계사 차시배지, 쌍계사 십리꽃길, 신촌마을, 목압마을 등을 거쳐 국사암으로 향하는 1.5킬로미터의 산길을 힘겹게 올랐다. 만장-영정-위패를 앞세운 고산 혜원 대종사의 법구를 뒤따르는 사부대중은 벚꽃잎 날리는 길을 무겁게 걸어 연화대로 향했다. 발걸음은 더뎠고 법구도 힘겹게 연화대로 올랐다.

▲ 착화하는 문도 대표들.

고산 대종사의 문도들은 법구를 연화대에 안치했고, 문도대표 보광 스님과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 등이 연화대에 착화하자, 쏟아지는 비에도 불꽃이 하늘로 솟았고, 사부대중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스님 어서 나오세요’를 외쳤다.

고산 스님의 49재는 3월29일 쌍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4월 5일 쌍계사, 3재는 4월 12일 부천 석왕사, 4재는 4월 19일 부산 혜원정사, 5재는 4월 26일 쌍계사, 6재는 5월 3일 통영 연화사, 막재는 5월 10일 오전10시 쌍계총림 쌍계사에서 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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