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향적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남동쪽 주조망. 송림1·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끝나면 최고 48층 고층 아파트로 둘려싸여 수행환경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 48m 아파트로 둘러싸일 판…주조망권엔 20층 건물

재단법인 선학원 인천 향적사(분원장 진우)가 수행환경 훼손으로 사찰 기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찰에서 불과 50m 앞에 최고 45층 높이의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향적사는 조망권과 일조권 침해는 물론 공사로 인한 건축물 피해와 바람이 심한 해안지역 특성상 빌딩풍 피해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적사는 인천시 동구 송현근린공원 동남쪽 기슭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 분원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보이는 탁 트인 경관으로 불자는 물론 인천시민도 즐겨 찾는 도량이다. 특히 경내에 2001년 조계종 전계대화상 성우 스님이 인도에서 모셔온 진신사리 5과를 모신 불탑이 있는 적멸보궁으로 인천지역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이자 신행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향적사의 수행환경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것은 인천 동구청이 2010년부터 추진돼온 ‘송림1·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하 재개발정비사업)을 2017년 12월 인가하면서부터다. 재개발정비사업은 인천시 동구 솔빛로70번길 10-3 일원 15만 3784.9㎡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재개발정비사업이 마무리 되면 이곳에는 지하 3층, 지상 45층 규모의 공동주택 3564가구와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당초 재개발정비사업은 민간임대 연계형 정비사업(뉴스테이)으로 진행됐는데, 사업지연과 이에 따른 땅값, 집값 상승으로 지난해 1월 일반재개발로 전환됐다. 당초 진흥기업이었던 시공사도 지난해 5월 열린 송림1·2동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임시총회에서 현대엔지니어링로 바뀌었다.

▲ 현대엔지니어링이 제시한 송림1·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 특화설계 조감도. 향적사(빨간 삼각형)가 고층아파트로 둘려싸여 있다.

문제는 아파트단지를 재설계하면서 사업구역과 붙어있는 향적사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물론, 수행환경 훼손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향적사의 고도는 해발 35m이다. 처음 아파트단지를 설계할 때는 주조망권을 고려해 향적사 앞 50m 지점에 5층 규모의 낮은 층 일자형 건물을 배치할 예정이었지만, 새 설계에서는 5층 건물 자리에 20층 높이의 아파트를 배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수행환경을 더욱 침해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하면서도 관할 관청인 인천 동구청과 시행사인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설계업체 등 관련 기관, 단체 중 어느 한 곳도 향적사에 사전 통보하거나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향적사가 2019년 12월 인천 동구청을 상대로 “20층 아파트 배치로 주조망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민원을 냈으나, 동구청 도시정비과는 이듬해 3월 19일 “조망권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며 묵살하기도 했다.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인 통경축(通經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향적사는 철저히 배제됐다. 향적사의 통경축은 주조망축인 남동쪽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사찰에서 50m 떨어진 곳에 20층 아파트, 주변 100m 이내에 100~135m 높이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고, 송림현대상가가 통경축을 가리고 막는다는 점에서 있으나마나 하다.”는 게 향적사의 입장이다.

그런데 2017년 3월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인천시 경관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송림1·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경관 계획’에 따르면, 경관심의위가 “송림로(35m)에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으로의 통경축 확보 방안을 검토 바란다.”고 의결하자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동서 방향 통경축 중 일부는 송림현대상가 도시환경정비사업 개발 후 차폐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송림로(35m)에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으로의 통경축을 추가 확보해 도로변 조망경관을 개선하겠다.”고 대답했다. 조망경관 개선을 이유로 향적사 인근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의 통경축은 추가로 확보하면서도, 향적사의 하나뿐인 통경축은 개선하기는커녕 20층 아파트를 배치해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향적사는 “아파트단지 재설계에 따라 국토교통부 공간정보 오픈 플랫폼인 브이월드(V World)를 활용해 조망이익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사찰 동쪽 황금고개 사거리 방향부터 남서쪽 송림1동행정복지센터 방향까지 시야가 고층 아파트에 가로막혔다.”며, “조망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 국토교통부 공간정보 오픈 플랫폼인 브이월드(V World)를 활용해 시뮬레이션한 모습. 현대엔지니어링의 특화설계 조감도보다 아파트가 더 높이 솟아있다. 사진 제공 향적사.

동지엔 하루 2시간만 햇볕…빌딩풍, 건축물 피해도 우려

향적사 분원장 진우 스님은 “조망 방향으로 100m 이내에 높이 100~135m 높이의 아파트가 완공되면 사찰과 아파트 간 거리에 대비해 건물이 상당히 높아 심리적 압박감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적사 조망점에서 주된 조망 방향으로 천공률(天空率)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천공률은 거실 창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는 창의 면적으로 조망권 침해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이다.

일조권 피해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진우 스님은 “시뮬레이션 결과 아파트단지가 완공되면 동지를 기준으로 향적사의 하루 일조 시간은 2시간이 못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진우 스님은 “일조권과 관련해서도 관할관청인 인천 동구청이나 시행사인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향적사에 의견을 묻거나 입장을 수렴하지 않았다.”며 “일조권 확보는 사업부지 정북 방향의 일조 보호를 위한 공법적 규제인 만큼 설계 당시 일조권 침해 여부를 검토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개발정비사업 설계 과정에서 <문화재보호법> 위반도 의심된다. 20층 아파트가 들어설 곳은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23호인 ‘송현배수지 제수변실’에서 반경 200m 안에 있다. 이곳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2구역에 해당해 평지붕은 최고 높이가 14m 이하, 경사지붕은 16m 이하인 건물만 지을 수 있다. 진우 스님은 “허용 기준을 초과한 건축물을 짓는 것은 관련 법령에 위반된다.”며, “50m 앞에 지어질 20층 아파트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단지 건설 후 입주민과의 마찰도 우려된다. 인천지역은 호남지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법회나 행사 등 향적사가 종교 활동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입주민과의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투명방음벽을 설치하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우 스님은 “절은 방음이 안 되는 구조”라며, “민원 방지를 위해 사찰과 아파트 끝선 사이에 투명 방음벽을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햇빛이 아파트 유리창에 반사돼 향적사로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과 아파트 고층부에서 사찰 경내를 샅샅이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 등도 수행환경과 스님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신도들의 신행을 방해할 사안으로 꼽힌다.

▲ 국토교통부 공간정보 오픈 플랫폼인 브이월드(V World)를 활용해 향적사 주조망을 시뮬레이션한 모습. 아파트로 둘러싸여 송림동 시가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재개발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 조망권과 일조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제공 향적사.

사업 추진 과정서 철저히 배제돼…사찰부지 맹지화 의혹도

재개발정비사업 진행시 발생할 건축물·구조물 피해와 아파트단지 완공 후 발생할 빌딩풍 피해도 우려된다.

발파로 인한 진동이나 터 파기로 인한 지반 침하 등은 향적사 건축물이나 구조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진우 스님은 “대웅전이 요사 2층에 자리하고 있는데, 요사에 기둥이 없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며,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질조사를 실시하고 피해를 막기 위한 공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우 스님은 또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산이 부산을 강타했을 때 부산 해안가 고층 아파트단지에 빌딩풍이 불어 유리창이 부셔진 것을 언급하며, “향적사는 마당에 있는 100년 된 단풍나무가 울어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심한 곳”이라며, “고층아파트 신축 후 발생할 빌딩풍에 대한 검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개발정비사업으로 사찰 앞 도로 폭이 축소되는 것도 향적사가 당면한 문제의 하나다. 재개발정비사업이 이루어지면 향적사가 위치한 송현근린공원과 송림1·2동 아파트단지 간 경계도로의 너비가 축소될 예정이다. 향적사는 아파트단지가 완공될 경우 차량과 보행자 증가로 사찰 앞 도로 교통 여건이 현저히 악화되고, 공원 이용객 등 불특정 다수 시민의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적사는 사찰 부지가 맹지화되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도로 변 근린생활시설 집중으로 사찰과 주택 간 단절 현상이 생기면 사찰 부지는 급격하게 맹지로 고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우려는 원래 일반 주거지역이었던 사찰 부지가 2000년대 초 송현1·2동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LH가 송현근린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향천사도 모르게 자연녹지로 변경돼 맹지화된 것에서 기인한다.

진우 스님은 향적사 부지가 1940년대부터 절과 주택이 있던 일반 주거지역이었다는 점, 향적사와 130m 거리에 있는 서부교회가 제2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점을 지적하며, “아파트가 건립되고 나면 향적사 부지의 맹지화가 고착될 것이므로 자연녹지로 변경된 사찰 부지를 반드시 원래대로 일반 주거지역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우 스님은 “향적사는 송림1·2동 지역을 재개발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만 사찰의 수행환경이 파괴될 것으로 예상되니 이를 시정·보완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향적사가 문화재보존관리구역 내에 있고 주지(분원장)가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합원인데도, 인천 동구청이나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재개발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통지문을 보내지도,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설계를 변경함으로써 수행환경을 해치고 사찰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초 설계대로 향적사의 주조망권 방향에 5층 이하 높이의 건물을 배치해 통경축을 확보하고 조망권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경문 인천 동구청 도시정비과 주무관은 “향적사와 재개발정비사업조합, 도시개발위원회 전문의원이 만나 도면 변경 과정상 사전 조율 등을 원활하게 소통해 가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행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측에도 일조권과 조망권을 반영해 설계를 변경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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