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7월 2일 일본 도쿄 조죠지에서 봉행된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 왼쪽 앞줄부터 홍보월 재일본 조선불교도협회 회장, 석태연 재일본 한국불교도연합회 회장, 좌측 뒷줄부터 황병대 조선불교도련맹 부위원장, 법홍 대한불교원효종 종정, 박서봉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사진 = 평불협 <하나로>(1995년 9·10월 합본호)

1995년 상반기에는 전국적으로 광복과 분단 50년을 기념하는 열기가 솟아올랐다. 국내의 통일 및 시민단체에서는 8월 15일까지 성명서 발표를 비롯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중에서도 그해 2월 말, 일본 오사카의 고마데라(高麗寺) 김태연 주지가 국내에 들어와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 합동위령제’를 열자는 제안은 국내 불교계의 핫 이슈가 됐다.

이런 사실은 같은 해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불교회의 때, 북측의 조불련 박태호 위원장에게도 전달되어 참가 의사를 확인한 상태였다. 황병대 조불련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구성되는 가운데, 남측에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이하 종단협)와 1976년경 발족한 한일불교친선협회를 중심으로 일본방문 대표단이 준비됐다. 그 과정에서 합동위령제의 명칭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와 불교식 재 의식을 가지므로 ‘재(齋)’가 바르다는 한국 측의 주장과 달리 추모하는 의미의 제사(祭祀)로 해석한 일본 측 주장이 다소 엇갈렸다. 일반적으로 제사는 망자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의식인데, 이후 후손들이 그 음식을 나눠 먹는 것〔飮福〕으로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불교식의 재는 음식 제공이 핵심이 아니라, 의식 속의 가르침을 따르고 공덕을 쌓는 데 의미를 둔다. 즉, 죽은 자를 위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체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여 법공양과 음식 공양을 베푸는 의식이다. 재 의식에서 음식을 올리는 것은 불교가 유교문화와 융합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절차라 할 수 있다.

사전부터 논란이 된 기념행사의 명칭은 결국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으로 확정되어, 그해 7월 2일 일본 도쿄의 조죠지(增上寺)에서 열렸다. 남과 북 그리고 일본 재일교포가 참여한 국제 공동행사는 1995년도 해방 50돌을 경축, 교류하는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 기념행사는 북측이 국제 교류 사업으로, 남측 불교계는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로, 일본 측에서는 재일본 교포사회의 화합 등을 목적으로 참여했다. 남과 북, 재일본의 불교계가 함께했던 1995년 7월 공동행사에 관한 이모저모와 더불어 그 당시 남북불교의 교류 방향과 현장을 다시 보고자 한다.

▲ 북측 조불련 대표단과 재일교포 기념 촬영. 1995.7.2. 일본 도쿄 증상사. 왼쪽부터 어명식 조불련 책임지도원, 황병대 조불련 부위원장, 재일교포, 리덕수 조불련 책임지도원. 사진 : 평불협 《하나로》 (1995년 9・10월 합본호

남북은 하나였다

1995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도쿄의 증상사에서 재일본 한국불교도연합회(약칭 한불협)와 재일본 조선불교도협회(약칭 조불협)가 공동 주최한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은 남북한의 불교계가 동참하면서 성황리에 마치게 됐다.

이 공동 법요식 개최에 따른 큰 의미는 1994년 5월 말 처음으로 일본에 입성한 다음, 북측 인사들이 일본의 심장 도쿄(東京)에 두 번째로 입국한 사실이다. 일본 조선불교도협회가 북측 조불련을 초청한 것으로, 조불련의 공동 법요식 참석은 일본 재일교포 사회에 커다란 이슈를 제공했다. 일본 측 언론을 비롯한 국내에서는 교계 언론과 불교TV의 집중 취재를 받았다.

일본 당국의 입국 불허 조치로 한때 곤욕을 치른 터라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던 조불련 대표단은 그해 7월 2일 도쿄 증상사 공동 법요식장에서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대표단은 행사 후에 별도 인터뷰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재일 교포들과의 개별 사진 촬영에는 자연스럽게 임했다. 또 참석한 재가 신도들과 합장 반배의 인사와 짧은 인사말은 원래 남북이 하나임을 잘 보여주었다. 일본 땅에서 통역이 필요 없는 대화와 서로 교감하는 말들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특히, 회색 두루마기 장삼을 입고, 그 위에 전통적인 붉은색 가사〔紅袈裟〕를 두른 조불련 대표들은 마치 일제강점기 때 상징이던 금강산의 붉은 승려를 연상시킬 만큼 강렬한 인상을 오래도록 남겼다. 박서봉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과는 “우리는 가사가 똑같다.”라며 별도의 기념촬영을 가지도 했다. 남측에서는 박서봉 태고종 총무원장을 단장으로 법홍 원효종 종정, 신법타 조계종 총무부장과 진각종 대표 등을 비롯한 1~2명의 재가자가 공동 법요식에 참가했다.

조불련, 처음 본 위령재

일본 도쿄 증상사에서 열린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에 참석한 조불련 대표단은 1995년 7월 1일 입국하여 같은 달 4일 오사카에서 출국,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후 8월 9일~18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조국해방 50돌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한 김도안 평불협 미주본부 회장과 신동수 국제위원장 등 미주 방북단과도 일정을 같이했다.

2003년 9월 8일에 갑자기 입적한 금산(錦山) 황병대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조불련 중앙위원회 유성철 상무위원과 어명식 책임지도원, 리덕수 책임지도원 4명이 참석한 공동법요식은 재일본 조불협과 한불협이 주관으로 1995년 7월 2일 오전 10시부터 일본 도쿄의 증상사 대법당에서 봉행됐다.

▲ 8·15광복 50년 조국통일기원 희생동포위령 공동 법요식. 1995.7.2. 일본 도쿄 증상사. 사진 : 평불협 《하나로》 (1995년 9・10월 합본호)

법요 행사장은 불단을 가운데로 하여 정면에 주관단체인 조불협과 한불협 대표가 자리하였고, 그 뒤쪽에 남북한의 대표가 자리한 다음, 재일본 승가와 재가, 일반 참석자들이 그 뒤로 도열해서 앉았다. 그리고 남북과 일본 초청 인사들은 주관단체 우측에 좌식으로 배치되었다. 북측 조불련에서는 황병대 단장과 리덕수, 어명식 책임지도원이 법요식의 모든 절차에 임했다.

총 1시간 반가량 진행된 공동 법요식은 음식을 차리고 올리는 제사 의식이 아닌, 경전을 먼저 암송하고 헌향하는 등 불교식 재(齋)로 거행됐다. 먼저, 남북한이 공통적으로 거행하는 반야심경 봉독을 시작으로 개막됐다.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 채로 한문 반야심경을 다 같이 합송하고, 주관단체인 재일본 한불협 석태연 회장이 축원을 올렸다.

이날 법요식 사회자가 “8·15광복 50년 만에 처음으로, 이국땅에서 희생된 모든 동포를 위해 석태연 회장이 대표로 축원을 했다고 우리말로 멘트를 했다. 그날 사회자가 한불협 김태연 회장을 석태연으로 호명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또는 자식이 된다.”라는 뜻에서 ‘석(釋)’이라는 성씨를 불명 앞에다 붙이는 불교 관습에 따른 것이다.

4세기 말, 중국 동진시대의 역경승 도안이 번역한 《증일아함경》에는 “출가하면 모두 석자(釋子)가 된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승려들은 모두 ‘석’ 자를 성처럼 써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관습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베트남 불교에서도 이 관습을 따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트남의 승려인 틱낫한과 틱꽝득의 법명을 한자로 쓰면, 석일행(釋一行)과 석광덕(釋廣德)인 것과 같다. 그리고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해서 받은 이름을 한국에선 불명(佛名), 중국에서는 법명(法名), 일본에서 계명(戒名)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불명 대신에 중국처럼 법명이라 쓰고 일반화되었는데, 북측에서는 불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어서 공동 법요식에서는 주관단체와 남북한 대표자들이 차례로 희생된 영령들을 위한 헌향 의식을 가졌다. 특히 남북의 초청 인사들은 짝을 이뤘는데, 리덕수 조불련 책임지도원은 신법타 조계종 총무부장과 어명식 조불련 책임지도원, 그리고 대한불교진각종 대표와 함께 헌향을 했다. 그리고 일본 총련 조불협의 여신도 대표가 희생동포 위령재에서 한글 추도사를 울면서 낭독하여 법요식장을 더욱 더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날 법요식 끝 순서로 각 대표의 인사 말씀을 청해 듣는 순서로 마무리되고, 다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그날 오후 2시부터는 ‘조국의 평화통일과 불교도의 역할에 관한 제1차 동경회의’ 세미나를 증상사 별실에서 가졌다. 국청사 주지의 인사말에 이어 황병준 부위원장과 석태연 고려사 주지의 기조발표 등 초청 인사들이 모두 참석해 토론을 가졌다,

비록 짧은 만남과 함께한 불교 의식은 조불련 대표단에 큰 울림을 주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법요식 형태의 위령재와 염불 등으로부터 남북한의 불교가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불교가 가지고 있는 교류 분야의 공통분모를 찾아낸 셈이다.

그런데도 해방 50년을 맞이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당한 모든 분을 위무한 남북한 그리고 재일교포와의 함께 했던 공동 위령재는 이제,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언젠가 함께 만나는 날,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공동 법요식이 다시 열리기를 기원해 본다.

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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