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계종 37대 총무원장 선거처럼 조용한 선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가 임박하였지만 그 흔한 하마평조차 돌지 않았다. 모두가 조계종단의 실세로 알려진 스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후보등록이 임박한 7월 말이 되어서였다.7월 30일, 차기 총무원장 선출을 위해 교구본사 주지 및 중앙종회 의원, 그리고 중진 스님이 회동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날 서울 모처에서 자승·종상(불국사 법주사)·법등(직지사)·장윤(전등사. 본사 아님)·돈명(은해사)·성월(용주사) 스님 등 중진 스님과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
현응 스님은 깨달음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큰 윤곽과 핵심만 알면 스마트폰 하나로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도 했다.현응 스님의 주장대로라면 깨달음도 이럴진대, 지난 2018년 5월 MBC의 의 현응 스님에 관련 보도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보도내용의 사실을 확인하고, 그 사실에 근거해 본인의 거취를 결단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은 현응 스님이 유흥주점과 숙박업소를 상습적으로 출입을 했으며, 여직원과 여신도 성추
4월 6일 교계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법흥사터에서 대웅전 초석 위에 앉은 것을 나무라는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대의 돌조각이고, 탄탄스님의 은사 자승 전총무원장이 흥전리사지에서 석조유물 위에 올라선 옛 사진까지 바로 나오면서 별 일 아닌 것으로 시끄럽게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그러나 4월 8일 조계종 대변인 법원 스님은 ‘법흥사터 논란’ 관련 입장문을 발표하고 “대통령 부부 법흥사터 초석 앉은 건 스님·불자들에게 또 다른 큰 상처” 라며 “문화재청장과 국민소통수석
육조 혜능은 “《금강경》을 듣는다면 마음이 열려서 깨달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강경》 제2선현기청분과 제17구경무아분에서 수보리는 부처님에게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낸 사람은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낸 사람은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고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느냐는 이 질문이 바로 《금강경》의 주제를 나타낸다. 즉,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일이란 첫째는 중생의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느냐는 문제이고, 둘째는 마음을 항복시키고서 그 마음이 어떻게 머무느냐는 문제인 것이다.
육조 혜능이 말하는 견성(見性)이 왜 성불(成佛) 즉 깨달음일까? 육조는 견성이 곧 불이법(不二法)이고 중도(中道)라고 말한다. 불교의 깨달음이 불이법이고 중도임은 모든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조가 견성이 곧 불이중도임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육조단경》에서 살펴보자. 광주의 법성사에서 《열반경》을 강의하던 인종은 혜능이 오조(五祖)에게 법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탄 열차가 중국 대륙을 58시간이나 달려 베트남에 도착하였다. 그는 27일과 28일에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물론, 북미는 오랜 동안 적대국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국으로, 북한은 미국을 언제든 평양을 폭격할 수 있는 깡패국가로 여겨온 만큼 불신을 떨쳐버리기에는 좀더 신뢰할 수 있는 조치와 공동체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회
선에서 깨달음은 말을 듣고서 문득 체험하는 돈오(頓悟)이다. 그러면 말을 듣고서 문득 체험하는 돈오는 어떤 깨달음인가? 《육조단경》에서 육조 혜능이 말했다. “위없는 깨달음은 모름지기 말을 듣고서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자기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無上菩提, 須得言下, 識自本心, 見自本性〕.”, “만약 자성(自性)을 알고서 한번 깨달으면, 부처의 지위에 도달한다.”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닫는 것은 자기의 본래 타고난 마음을 아는 것이며, 또한 자기의 본래 타고난 본성을 보는 견성(見性)이다. 즉, 선에서 말을 듣고서 곧장 깨닫는 것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인 것이다. 육조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 견성성불임을 말한다. “오조(五祖)께서 《금강경》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마땅히 머묾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라는 구절에 이르자 저는 그 말씀을 듣고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온갖 법이 모두 자성(自性)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조께서는 제가 본성을 깨달았음을 아시고서는 곧 대장부요 부처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선종이 발생하여 크게 부흥할 때에 나타난 수많은 선사들의 깨달은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조당집》이나 《전등록》의 기록을 보면, 선사들은 모두 말을 듣고서 곧장 깨달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랜 수행의 끝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닫는 것이다. 말을 듣고서 곧장 깨닫는 것을 당시 표현으로 “언하대
연기와 업의 원리만 적용해도 나는 고 김용균에 침묵할 수 없다. 나와 김용균은 무수한 연관관계와 조건과 인과 속에 있다. 그에 대한 업은 내 업이기도 하다. 설혹 내 업을 다 풀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인 내게 공업(共業)이 남아 있다. 불자의 목표는 위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주지하듯, 《유마경》에서는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고 하였다. 김용균과 같이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 자비심을 갖는 것은 불자로서 타당한데, 그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제도 등 구조적 폭력에 대해 분노하면 불자가 아니란 말인가. 요한 갈퉁의 지적대로 구조적 폭력을 없애는 것이 적극적이고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는 길이다. 《대방편경》을 보면, 한 선원이 499명의 선원을 죽이려고 하자 선장은 세 차례나 그러지 말라고 그 선원을 설득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자 그를 죽여 499명을 살리고 그 사람의 업을 대신 받는 선택을 한다. 그 선장이 바로 부처님의 전생이었다. 이를 근거로 필자는 ‘정의로운 분노’ 또한 타자의 입장에서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어 옳지 않지만, 나보다 약한 이들의 고통을 내 병처럼 아파하여 내는 ‘자비로운 분노’는 불교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자 어떤 학자는 그 선장은 부처라는 조건에 있었기에 분노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고 중생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불자의 목표는 깨달음이 아니라 열반이며, 부처와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그 순간, 약자의 고통에 동체대비의 자비심을 내어 자신의 몸을 바치는 그 순간에 그는 부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진속불이(眞俗不二)다.
에 이런 대화가 있다. 어떤 학승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를 닦는 것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도는 닦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닦아서 이룬다면, 닦아서 이루는 것은 다시 부서지니 곧 소승 수행자와 같을 것이다. 만약 닦지 않는다면, 곧 범부중생일 것이다.” 도는 수행과는 관계가
선의 역사에서 좌선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깨달음으로 안내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아마도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깨달은 이야기일 것이다. 마조도일은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제자를 130여명을 배출했다는 대종장이지만, 처음 출가해서는 스승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좌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남악회양이 어느 날 도일이 좌선하고 있는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는 비록 독재정권 치하였지만 대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어느 시인의 말에 공감하였다. 교수가 방일과 더불어 고독과 싸워가며 진리를 탐구하고 이를 올곧은 목소리로 토해내었고, 학생들은 그로도 갈증을 느껴 지구 전체를 삼킬 듯한 지적 호기심으로 밤새 하얗게 눈을 밝히며 책을 읽고 거리와 교정을 오고가며 고통스럽게 사색하였고 열정
삼라만상이 생주이멸(生住異滅)하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절정의 순간에 사라진다. 단풍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한껏 도취된 황홀감과 스러지는 낙엽이 던지는 무상감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이 녘엔 한국의 산사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다. 고려시대에 한국풍수에 따라 3,800곳의 비보사찰이 앉았던 자리가 모두 경승지다. 빨강, 노랑, 갈색, 초록 잎이 어우러진 숲
육조혜능(六祖慧能)이 오조로부터 깨달음의 인가를 받고서 15년 동안 숨어 살다가 드디어 인종 법사가 을 강의하는 곳에서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자신이 5조에게 인가받은 6조임을 드러내었는데, 이윽고 인종 법사가 물었다. “황매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이다. 혜능은 수행법에 대하여 어떤 입장일까? <육조단경>에 보면 황제가 파견한 설간이라는 사신이 혜능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서울에 있는 선승들은 모두 말하기를 ‘도를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좌선하여 선정을 익혀야 한다. 선정으로 말미암지 않고 해탈을 얻은 자는 아직 없었다.
지금 조계종은 새로운 총무원장 선거로 들썩이고 있다. 종단에서는 원행 스님을 비롯한 여러 후보가 등록을 마친 후 밀담과 모의가 한창이다. 불교개혁행동을 중심으로 한 종단개혁 진영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여러 운동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총무원장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수장이자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그에 부합하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위
선(禪)은 곧 수행(修行)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수행의 방식에는 가부좌을 하고 앉아서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좌선(坐禪)을 비롯하여 화두를 들고 살펴보는 간화(看話)나 나타나고 사라지는 의식(意識)을 관찰하는 관심(觀心)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외에도 화두를 염불처럼 외우는 염불선(念佛禪)이나 앉아서 호흡을 헤아리는 수식관(數息觀) 등 다
오매일여가 선(禪)의 역사에서 또 한번의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은 의 저자로 유명한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가 깨달은 이야기이다. 에 나오는 고봉의 글을 근거로 하여 그의 경험을 살펴본다. 중국 임제종 양기파로서 대혜종고 선사보다 후배인 고봉은 어느 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
지금 조계사 앞 우정공원에서 87세에 이른 설조 스님이 “교단 정화의 불을 지피는 데 내 몸뚱이를 심지로 쓰겠다”라며 7월 17일 현재 28일째 단식정진 중이다. 주지하듯, 우리 몸은 일종의 화학공장이다. 음식을 먹으면 내장에서 물질로 분해하여 에너지를 만들고 이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을 한다. 외부로부터 물질의 공급을 차단해도 에
오매일여가 선(禪) 공부에서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은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종고가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대혜는 운문종, 조동종 등 여러 곳의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21세에 담당문준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이어나갔다. 담당은 자신의 죽음이 당도하자 대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설법도 잘하고 선시도 잘 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