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면 염화미소(拈華微笑)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그걸 논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짧게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느 날 설법하는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대신 대중들에게 연꽃을 들어보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가섭존자 혼자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단다. 곽시쌍부(槨示雙趺),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와 더불어 세 곳에서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심인(心印)을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 가운데 하나다. 선종(禪宗)에서는 이 삼처전심을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유일한 근거라 하여 매우 중요시해 왔다.

뜻 깊고 예쁘기까지 한 이 ‘염화미소’라는 말이 요즘 때 아닌 수난을 당하고 있다. 법등스님이 ‘염화미소법(拈華微笑法)’이라는 이름의 총무원장 선거법을 만들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기관지 <불교신문>에서는 “현행 총무원장 선거제도가 갖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복수의 후보자 추천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종정예하가 추첨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 선거법”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기관지에서 이렇게까지 써대는 걸 보면 현행 총무원장 선출 문제에 있어서 폐해가 많다는 걸 알긴 하나보다.

지난 8월 10일 염화미소법이 공식적으로 제안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대회의실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제안자인 전 호계원장 법등스님,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성문스님, 불교광장 회장 지홍스님, 종회 종헌종법특위 위원장 초격스님, 총무부장 지현스님 뿐 아니라 장명스님 등 법등스님이 소속된 삼화도량 소속 스님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여야가 함께 법등스님의 제안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법등스님의 제안을 자세히 살펴보자. 염화미소법은 총무원장 후보로 등록한 스님들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거친 뒤,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통해 득표 순위대로 계(戒), 정(定), 혜(慧) 3인의 후보자를 선출하고 이를 원로회의 의원, 교구본사 주지, 종회의원 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종정 스님이 추첨으로 뽑는 방식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기발하다!

법등스님은 지난 5월 17일 나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었다. 나는 당시 법등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가 싶었지만 나를 찾아온 목적과 동떨어진 이야기여서 “다른 문제는 그냥 놔두시고 직선제가 되도록 노력하시라”고 충고했었는데 지금 보니 여태껏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법등스님에게 몇 가지를 묻고 싶다.

첫째, 현재 조계종의 <선거법> 제13조에 의하면 총무원장은 승납 30년, 연령 50세, 종사급 이상의 비구로서 △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역임 △ 교구본사 주지 4년 이상 재직 경력 △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 2년 이상 재직 경력 △ 중앙종회의원 6년 이상 재직 경력 △ 각급 종정기관 위원장 역임 등 이 가운데 하나를 갖추어야 피선거권이 있도록 규정돼 있다. 총무원장의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것이다. 나는 염화미소법에서도 이 같은 제한을 둘 것인가를 먼저 묻고 싶다.

참고로 대통령 피선거권에는 그런 자격 제한이 전혀 없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40세 이상이면 된다. 국회의원 경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장관을 지낸 사람이라야 한다거나 그 흔한 학력제한조차 없다. 총무원장이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얼굴이지만 그 선출에 있어서 수행과 인품을 전혀 따지지 않고 사판으로서의 행정 경력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둘째, 법등스님은 총무원장 후보로 등록한 스님들에 대해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고 하였다. 어느 선까지의 엄격한 검증을 말하는가? 다른 곳도 아닌 조계종에서, 온갖 범계자와 범법자들 중앙 정치무대를 휘젓고 있는 조계종에서 ‘엄격한 검증’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지 궁금하다.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셋째, 누가 검증할 것인가? 권력이라는 속성으로 봤을 때 결국 검증을 하는 사람들도 권력 주변인들일 것이고,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검증이란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지 않고 과연 문자 그대로 철저한 검증을 할 수 있을까?

넷째,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통해 득표 순위대로 3인의 후보자를 선출하겠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321명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할 경우 현행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갈 텐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다섯째, 3인의 후보자를 선출한 후에는 원로회의 의원, 교구본사 주지, 종회의원 등이 모인 자리에서 종정스님이 추첨으로 뽑겠다고 했다. 법등스님은 다른 자리에서 산통을 흔들어 뽑는 방식을 말했다는데 절집에서는 이런 제비뽑기 방식이 강원 외에는 사용된 적이 없었다. 승가의 전통에도 없는 이런 방식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가?

여섯째, 경쟁자 3명을 대상으로 제비뽑기 방식을 선택한다면 거기에는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많을 것이다. 가령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종정스님만 알 수 있게 표식을 한다거나 하는 우려 때문에 종정 스님에게 눈가리개를 씌우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경우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곱째, 종정 스님이 어떤 형태로든 총무원장 선출에 간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종정 스님에게 최종 책임을 줌으로써 예전의 종정 중심제-총무원장 중심제의 다툼이 재연될 가능성은 없는가?

여덟째, 법등스님이 제안한 내용을 살펴보면 총무원장 후보 등록-검증-투표-추첨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다. 총무원장 투표 후 결선 추첨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염화미소법이라는 고상한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름을 바꿀 용의는 없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른바 ‘염화미소법’을 밀어붙일 경우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이 방식은 종단의 핵심 세력들 각자의 필요에 의해 잠시 관심을 끌고 있을 뿐 실제 실현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총무원장 직선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었던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수시로 선거제도의 폐해를 들먹이며 선거제도 무용론을 설파했었다. 직선제를 할 마음이 없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종회의장 성문스님도 직선제에 대해 “94년 종단개혁으로 선거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역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본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었다. 그도 총무원장 직선제를 할 마음이 없는 상태다.

법등스님은 지난 2014년 9월2일 총무원장 직선제 실현 사부대중연대회의 대표 발기인으로 창립을 주도하며 직선제 개헌을 주장해왔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동안 총무원장 직선제 실현 사부대중 연대회의의 활동이 지지부진해왔고, 현실적으로 직선제를 실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직선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염화미소법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직선제 추진을 접었다는 이야기다.

자승스님이나 성문스님이나 직선제에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법등스님의 면피성 이 제안으로 인해 일단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그밖의 크고 작은 정치 세력들도 지금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셈을 하느라 계산기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직선제에 쏠려 있었던 종도들의 관심이 법등스님의 제안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법등스님은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직선제에 대해 물타기를 한 것이고, 서의현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자승스님을 돕고 있다.

조계종의 부정부패와 범계(犯戒) 문제는 선거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결국 직선제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종단 권력자들은 직선제를 하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직선제가 우리 절집에 맞지 않다는 말도 할 것이고 전국의 스님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여서 불교가 망하게 될 거라는 협박도 할 것이다. 게다가 비구니 스님들이 투표권을 가지면 어떻게 된다는 둥 별별 거짓말을 다 늘어놓을 것이다. 그런데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하는 말은 철저하게 계산된 권력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참정권에 있어서 남녀의 구분은 시대 역행이다. 그러므로 비구든 비구니든 구족계를 받은 모든 스님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선거권을 갖고 종단의 대표자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망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망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류의 역사가 참정권 확보의 투쟁이었다면 직선제는 그 최종 결과물이다. 정치제도의 열매가 직선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권력자든 자신의 권력을 잃을 수 있는 직선제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예는 없다. 조계종의 권력자들도 그럴 것이다. 자승스님이든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든 간에 말이다.

한북 스님 |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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