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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도일

기사승인 2019.07.11  15: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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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중국 부처의 탄생

선불교는 생각할수록 이상한 종파다. 불교의 교주를 똥 막대기라고 부르지 않나, 경전을 고름을 닦은 종이에 비유하면서도 스스로를 불교도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만일 기독교인이 공공연하게 붓다나 불경에 대해 이처럼 말하고, 어록이란 형태로 그 기록을 전해왔다면 어땠을까. 더 이상한 것은 선불교의 과격한 주장을 접한 불자들이 선불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는 데 있다. 도발적 수사(修辭)에 담긴 의미를 다 이해할 만큼 성숙해서일까, 아니면 원래 그래왔기에 그러려니 하는 것일까.

꼭 이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비판불교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일군의 불교학자들이 여래장이나 화엄, 선불교 등은 모두 불교의 종지(宗旨)를 벗어난 일원론적 아트만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관한 한국불교학계의 대응은 대체로 감정적이었는데 ‘학문적 사기’라거나 ‘지적 테러리즘’이란 말이 당시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나는 비판불교가 주장하는 내용에 전혀 공감하지 않지만 적어도 종교적 엄숙성에 짓눌려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는 높이 사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불교사상과 종파는 모두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토대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벽돌 갈아 거울 만들래?”…… ‘평상심이 도’라는 가르침

선불교도 마찬가지다. 사실 남종선이라 불리는 선종은 기존 불교계의 관행을 끊임없이 파괴하면서 성립된 종파다. 좌선이라는 수행법에 대해 육조혜능과 신회는 모두 “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고 규정했다. 드러난 행위보다는 그 본질을 간파하려 애를 쓴 것이다. 이는 장자(莊子)가 말한 수행법인 심재좌망(心齋坐忘), 줄여서 좌망(坐忘)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가만히 앉아서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욕망으로 그득한 마음을 비워 도리와 합치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 선불교의 수행은 호흡법과 자세를 중시하는 인도불교가 아닌 중국의 토양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자생적 불교라 할 것이다. 좌선에 대한 입장은 남악회양과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일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회양 아래에서 수행을 하던 마조에게 회양이 묻는다.

“그대는 좌선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붓다 또한 나무 아래에 앉아 선정에 들어 깨닫지 않았는가라고 되묻는 것이다. 그때 회양은 벽돌을 들고 와 좌선 중인 마조 옆에서 갈아대기 시작한다. 신경이 쓰인 마조가 묻는다.

“벽돌을 갈아 무엇을 하시려고 합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대화는 조금 더 이어지지만 여기까지만 보아도 문답이 겨냥하는 바는 확연하다. 회양과 마조 사이에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후대의 선사들이 남종선의 실질적 종조(宗祖)인 마조를 이 이야기 속에 배치했다는 사실에서 선불교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선불교가 조용히 앉아서 부처를 이루려는 종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조는 ‘평상심이 도’라고 말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의 일상의 모든 찰나가 선이자 수행으로 전환할 때 선사라고 불릴 자격을 갖고 있다는 관념은 마조에서 비롯한 것이다.

조사선의 자부심, 마조로부터 시작

나는 위에서 남종선의 실질적 종조가 마조라고 말했다. 달마나 육조혜능을 젖혀둔 것이 의아하겠지만, 선어록이나 선사의 일반적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불법의 정수를 묻는 제자에게 엉뚱한 말로 받아치는 선문답이나 돌연 소리를 지르거나 뺨을 후려갈기는 등의 기행(奇行), 그리고 불자(拂子)를 조용히 들어 올리는 모습은 마조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마조(馬祖)란 이름은 마씨 성을 가진 조사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선사들은 자신이 거주했던 지역이나 산의 이름에서 호칭을 따오는 것과 다르게 종조의 냄새가 물씬 배어난다. 마조는 선사 가운데 특이하게 부처와 필적할만한 용모적 특색을 지녔다고 기술된다. 소처럼 느릿느릿 걷고 호랑이처럼 사물을 꿰뚫는 눈빛을 지녔으며, 혀가 길어 코를 덮을 정도이고, 발바닥에는 석가모니처럼 전법륜상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특히 ‘우행호시(牛行虎視)’는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를 묘사하는 말로 널리 알려졌는데, 꾸준한 실천력과 뛰어난 지혜를 모두 갖추었다는 식으로 해석되지만, 실제 숨은 뜻은 보조를 중국 선불교의 종조인 마조와 비견하고 있는 것이다. 마조의 용모에 관한 이러한 묘사는 이제 석가모니를 대체할 중국의 새로운 부처의 탄생이자 조사선이 부처의 여래선보다 윗길이라고 주장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됨을 암시한다. ‘석가도 몰랐거늘, 가섭에게 전했으랴.’라는 조사선의 자부심이 마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조가 마조로 불리게 된 것은 본인의 덕이 아니다. 혜능과 신회의 관계에서 보았듯 스승의 이름은 후대의 뛰어난 제자가 드높이는 것이다. 마조 아래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백장회해, 방거사 등 출가와 재가를 가리지 않은 선불교의 거목들이 모두 그의 문하였다. 중국과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는 마조라는 거대한 뿌리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강호진 .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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