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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기린아

기사승인 2019.08.12  16: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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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두 희천

내가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을 잊지 못하게 된 것은 성철스님에게 받은 법명 때문이다. 어떤 이가 일각(一角)이란 내 법명을 듣더니 ‘그거 굉장한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연유를 물었더니 그는 석두와 청원행사가 나눈 다음과 같은 문답을 들려주었다.

조계산 육조혜능의 문하에 있던 석두는 육조가 열반에 들자 법을 묻기 위해 청원행사를 찾아갔다. 행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조계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얻으러 여기까지 왔는가?”

“조계에 들기 전에도 잃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조계엔 왜 갔는가?”

“조계에 들지 않았다면 잃은 것이 없다는 걸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화상은 육조대사를 아십니까?”

“자네는 나를 아는가?”

“알아도 어찌 안다고 하겠습니까?”

여기서 행사는 석두의 그릇을 딱 알아보고는 말했다.

“온갖 뿔 달린 짐승이 많지만 기린(麒麟)의 뿔 하나면 족하구나.”

여기서 기린은 뿔이 하나 달린 상상 속의 동물을 말한다. 나의 법명은 ‘빙산의 일각’이란 뜻이겠지만, 석두는 말 그대로 선종의 ‘기린아’였다. 그의 문하에서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는 남종선이 확립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강서(江西)에 마조가 있었다면 호남(湖南)은 석두였던 것이다.

마조와 석두, 누가 금이고 누가 동전인가

석두는 여러 면에서 동시대에 살았던 마조와 대비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만일 마조를 수많은 학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대치동 스타강사에 비유할 수 있다면, 석두는 산중에 조용히 묻혀 소수의 사람을 가르치는 청학동 훈장 스타일이었다. 마조와 석두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문하의 승려들 사이엔 경쟁의식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석두의 법을 이어받은 천황도오가 마조의 법을 이은 백장회해에게 출가한 친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석두의 가르침은 금덩이고, 마조는 자잘한 재화인데, 스님은 어찌해서 그런 곳에 머문단 말이오. 속히, 속히 오시오.”

석두와 마조의 선법이 지닌 차이점을 지금의 우리로서는 분간하기 어렵지만 당대의 승려들은 확연히 다르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오설영묵이란 선사는 애초에 마조 문하였지만 그 가르침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석두에게로 가서 제자가 되었다. 영묵이 마조에서 석두로 옮아간 일화는 어쩌면 두 선사의 가르침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묵이 스승을 갈아탄 사연은 엉뚱하게도 마조와 백장회해 사이의 선문답에서 비롯한다.

어느 날, 마조가 제자들과 함께 서쪽 성벽 근처를 거닐다가 갑자기 오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마조가 백장회해(문헌에 따라서는 백장유정)에게 물었다.

“방금 그게 뭐지?” 백장이 답했다. “오리입니다.” 여기까지는 일상적 문답으로 보인다. 그때 갑자기 마조가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갔나?” 백장은 무심코 “날아가 버렸습니다.”라고 답한다. 백장의 대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가 아니라 ‘날아가 버렸습니다.’인 것은 이미 사라진 오리의 행방을 왜 새삼스레 따지냐는 반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마조는 백장의 코를 잡고 세게 비틀어버렸다. “아아악!” 백장의 비명소리에 마조는 말했다. “아직 여기 있는데 어디로 날아갔단 말인가?” 이때 백장은 확연히 깨달았다.

그런데 《조당집》에 따르면 당시에 이 일을 목격했던 영묵은 제자 사이의 질투였는지 아니면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서러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곧장 마조를 찾아가 따졌다.

“저는 과거시험도 포기하고 스승님께 출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음을 움직일만한 가르침은 접하지 못했습니다. 백장에게 깨달음을 주셨으니 저에게도 뭔가 깨달을만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마조는 가르침을 주는 대신 좋은 말로 돌려서 제자를 내친다.

“내 능력으론 널 깨우칠 수 없으니, 다른 스승을 찾는 게 좋겠구나.”

사랑했던 연인이 지겨워질 때면 상투적으로 내뱉는 이별사인 ‘나는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넌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그리곤 남악의 석두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골칫거리를 석두에게 떠넘긴 것이다.

영묵이 석두의 제자가 된 이유

순진한 영묵은 700리를 내달려 석두를 찾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말 한마디로 서로 계합한다면 여기에 머물겠지만, 아니라면 바로 떠날 겁니다.” 그

는 신발을 신은 채 법당에 올라가 절을 한 다음 석두 앞에 섰다. 석두는 지극히 평안하게 묻는다.

“자네 어디서 오는 길인가?”

“강서의 마조대사 아래에서 왔습니다.”

“수업(受業)은 어디서 받았는가?”

사실 이 질문이 석두의 핵심이다. 석두는 율장을 보다가 “자신의 본래 부처가 지닌 청정한 마음(자성청정)이 계율의 본체이다.”란 구절에서 한 소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업을 어디서 받았는가는 누구에게 계율이나 가르침을 받았냐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둔한 영묵은 뻔한 질문이라 여겨 소매를 떨치며 돌아섰다. 영묵이 법당 문을 나서려는 순간 석두가 불러 세웠다.

“어이!”

한 쪽 발은 법당 안에, 다른 쪽 발은 문 밖에 놓인 상태로 영묵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는 손날을 눈앞에 세워 보이며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이 놈일 뿐[只這箇漢]인데 또다시 머리나 돌려서[更轉頭腦] 뭣 하려는가?”

여기서 영묵은 깨달음을 얻고 석두의 법을 잇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화로 마조와 석두 가르침의 차이를 알겠는가? 하근기인 나에게는 마조의 ‘평상심이 도’란 가르침과 석두의 ‘오직 이 놈’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오직 이놈일 따름인데 잔머리나 굴려서 뭣에 쓰겠는가?

강호진 작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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