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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 남겨진 가족

기사승인 2019.09.11  09: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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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진', '생일'

삶은 예측할 수 없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남에게 베풀면서 착하게, 양심적으로 산다고 재난이 비켜가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보다 일어났을 때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삶을 이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에겐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두 영화를 골라봤다.

   
 

대지진 (펑샤오강 감독)

1976년 7월, 중국 당산지역에 실제 대지진이 일어났었다. 23초의 짧은 지진으로 27만 명이 사망했다. 이 엄청난 지진을 소재로 펑샤오강 감독은 한 가족의 삶을 그려냈다.

일곱 살 쌍둥이 남매 ‘팡덩’과 ‘팡다’, 그리고 사이좋은 부부. 누가 보아도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다.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엄마, 아빠가 데이트를 하러 나간다. 그런데 부부가 집 밖으로 잠시 나온 사이 참극이 벌어진다.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평범한 가족은 지진으로 엄청난 삶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어지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구하고 죽자 아내는 슬픔을 느낄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찾아나선다.

얼마 후 팡덩과 팡다가 건물 아래 깔려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을 불러 구출하려 하지만 같은 건물더미에 깔렸기 때문에 지렛대를 받쳐 한 명만 살릴 수 있었다. 둘 다 살리고 싶은 엄마는 애가 끓었지만 도와주던 사람들도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한 아이만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엄마는 결국 남동생 팡다의 이름을 작게 불렀고 그 소리를 팡덩이 듣고 말았다. 구해진 아들은 한쪽 팔이 잘렸고 죽은 줄 알았던 딸은 시간이 흐른 뒤 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 복구를 위해 투입된 군인에 의해 이송된다.

남편의 희생으로 살게 된 아내와 팔을 잃은 아들은 함께 살며 매년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당산을 떠나라는 요구가 있어도 죽은 남편과 딸이 제삿밥을 먹으러 찾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해 엄마는 낡은 집을 고집한다.

딸은 군인 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잘 커서 의학대학까지 갔지만 아이 하나를 얻고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양남자와 결혼해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2008년 중국 사천에서 다시 지진이 발생한다. 중국 전역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만 특히 피해를 당해 본 당산 출신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팡덩 역시 캐나다에서 날아오고 여행사를 운영하는 팡다도 구호물품을 갖춰 사천으로 왔다. 팡다가 당산 출신 사람에게 어렸을 적 얘기를 들려주는 걸 듣고 팡덩은 그가 동생임을 알게 되고 결국 해후한다. 그간 엄마가 이사 한번 하지 않고 재혼도 않고 죽은 가족들에게 사죄를 했다는 것을 알고 팡덩은 엄마를 용서한다. 그리고 만난 둘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실제 영화촬영 때 2천여 명의 엑스트라 중 대부분이 당산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당산시민들이었고 당산지역 정부에서 한화로 치면 2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영화다. 13억 중국인민들의 열화와 같은 관람으로 1천억 원 이상의 수입 을 올렸다고 한다.

생일 (이종언 감독)

   
 

2014년 세월호의 침몰 사고. 사고 2년이 지난 시점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정수호’라는 가상의 사망학생을 세워 그 가족을 그렸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정일이 그 사이 이사했다는 주소로 찾아오지만 집안에서 남편을 확인한 순남은 딸 예솔이를 보고 조용히 하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사정은 이렇다. 베트남에 파견된 정일이 책임을 맡은 현장에서 사고가 있어 직원이 죽었고 그 일로 재판을 하느라 집을 팔고, 빚을 지고도 벌어놓은 돈이 없는 형편이다.

가정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었지만 그런 사정 때문에 가족을 보지 못하고 떨어져 살면서 일만 한 남편. 남편의 빈자리를 아들 수호에게 정서적으로 기대며 마트 계산원 일을 해온 엄마 순남. 정일은 가족에게 미안해하지만 순남은 아들을 잃은 그 시간에도 함께 하지 않은 남편을 몸서리치게 미워하게 되었다.

순남은 밥벌이를 위해 마트로 출근하고, 옆집과 잘 지내고, 딸 예솔이도 잘 챙겨 일상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죽은 수호를 위해 옷을 사서 걸어놓고, 센서등이 이유 없이 켜지면 아들이 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유가족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아픔을 견디지만 순남은 혼자서 상처를 꽁꽁 싸매는 쪽을 선택했다. 세상으로 열린 문을 닫아걸고 성안에 스스로를 가둬놓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유가족을 만나면 보상금 얼마를 받았는지 묻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대학에서 학비 면제를 받는다는 등의 뉴스를 보며 ‘저 사람들은 좋겠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순남을 세상 반대편으로 가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초등 저학년인 딸 예솔이가 반찬 투정을 부리자 순남이 “오빤 밥도 못 먹는데 네가 밥투정을 해?”라며 미친듯이 화를 내고 아이를 내쫓는 장면, 학교에서 갯벌체험을 갔는데 예솔이가 들어가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장면, 혼자 있던 순남이 아들을 그리며 절규하는 장면 등은 남겨진 가족이 얼마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지 보여준다.

순남의 절규하는 울음소리에 옆집 딸이 미쳐버릴 것 같다며 집을 나설 때 그의 엄마와 하는 대화는 꼭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너도 처음엔 같이 울었잖아.”

“그래서? 계속 같이 울라구?”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30여분 동안 보여주는 생일잔치 장면이다.

남겨진 이들은 각자가 품은 수호의 모습을 꺼내놓고 울고 또 웃는다. 수호가 구명조끼를 전해줘 목숨을 구한 여자아이가 꽁꽁 감췄던 얘기를 꺼내고, 순남도 그날 아침 애타게 자신을 찾은 수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며 운다. 정일 또한 그 동안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고 순남은 그런 남편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순남은 이제 웃을 수 있게 됐다. 자기만 기억할 거라 생각한 아들을 모두가 기억하며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은 가족은 이제 평온한 삶을 찾았다. 그 평온함을 센서등이 반짝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박정미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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