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아시타비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뜻의 신조어로 ‘내로남불’이란 시쳇말 (時體-)을 한자로 조어한 것이다. 한국의 교수집단이 세상에 대해 이러한 일갈을 내지를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논외로 하자. ‘마당은 삐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칠’ 수 있는 거니까. 핵심은 이 시대가 사람을 사람일 수 있게 하는 윤리 적 토대가 몰락한 시대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 회 전반에 만연한 도덕의 파탄은 능력주의와 목적 중심주의를 표방하며 무한 경쟁을 추구한 세상이 마주쳐야 할 숙명적 업보이다. 나의 목적과 이익을 위 해서라면 나와 대립하는 타자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존재가 된다. 흉포한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오래된 미래, 즉 철학의 지혜와 종교적 가르침을 다 시 톺아보는 작업일 것이다. 나는 동산 양개(洞山 良价, 807~869)에게서 이 시대 에 절실한 가르침을 본다.

동산은 선종의 다섯 집안 가운데 첫 번째로 종파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조동종(曹洞宗)의 개조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임제종은 개조인 임제의 이름을 땄고, 운문종은 운문의 이름을 땄는데, 왜 동산이 개조인 종파만 조동종이라 부르는 걸까? 이는 조동종이 동산의 제자인 조산 본적(曹山 本寂)의 ‘조’와 스승 동산의 ‘동’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오가(五家) 가운데 하나인 위앙종은 스승 위산과 제자 앙산의 첫 글자를 따서 위앙종으로 칭하는데, 왜 조동종은 스승과 제자의 순서가 뒤바뀌었을까? 역시 모든 권위와 습속을 부정하는 철저한 선의 정신이 종파의 이름에 반영된 것일까? 사실 제자의 이름이 앞에 서게 된 것은 조산의 조(曹)가 선종의 시조인 육조 혜능이 머물렀던 조계산의 조(曹)와 같았기 때문이다. 조동종이란 이름은 조계, 다시 말해 육조을 선양하고 그의 법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선종에서 말하는 ‘살불살조’란 그저 말일 뿐, 실생활에서는 유교적 조상숭배와 적통주의에 복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허물을 모두 동산에게 전가할 필요는 없다. 조동종이란 종파 또한 동산 사후에 형성되고 붙여진 이름이니 말이다. 동산은 불가의 예법과 습속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선사로서 그에 대한 비판 정신 또한 잃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조당집》은 이렇게 전한다.

어떤 승려가 물었다.

“스승의 재를 지내는 건, 스승을 인정한단 뜻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절반은 인정하지만, 절반은 아니다.”

“왜 전부 인정하지 않는 겁니까?”

“만약 그렇게 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왜 스승을 저버리는 일입니까?”

“합당한 것〔合頭〕만 지키고 있으면 몸을 꼼짝할 수 없지.”

또 다른 승려가 동산에게 ‘왜 스승인 운암의 재를 지내는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스승의 도덕도, 스승의 불법(佛法)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내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라고 답한다. 이는 집단의 의례를 따라야 하는 승려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선사라는 이중적 지 위 속에서 동산이 어떻게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묘리를 찾아냈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이 기회주의적 처신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동산은 이에 관해 나름의 확고한 철학을 가졌던 인물이다.

동산의 철학은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로 압축할 수 있다. 정중편(正中偏)· 편중정(偏中正)·정중래(正中來)·편중지(偏中至)·겸중도(兼中到)의 오위(五位)를 여기서 모두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 이 이론은 점진적 수행을 위한 방편론이자 세상을 현상[事]과 진실[理], 아(我) 와 타(他)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거나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란 핵심만 간취해도 충분하다. 이를 화엄 원융사상의 선종 버전(version)이라 거칠게 말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산이 완성한 심오한 사유의 고갱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나는 그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지은 짧은 〈과수게(過水偈)〉에 오롯이 들어있다고 본다. 그는 스승인 운암 담성(雲巖 曇晟)의 가르침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다가, 스승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중 개울을 건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읊는다.

절대로 남에게 구하지 말라. 까마득해서 나와 멀어지리라.

나는 이제 홀로 가노니, 곳곳에서 그를 만나네.

그는 이제 곧 나이고, 나는 이제 그가 아니네.

응당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진리를 체득하리.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磨會 方得契如如

이 심오한 게송에 대한 해석의 시도는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오래전 동산 후대의 선사들부터 근래의 동아시아 불교학자들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선 현상과 본체, 회호(回互)나 불회호(不回互) 같은 난해한 불교적 참조에서 벗어나 색다른 프레임으로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게송은 전체적으로 나[我]와 남[他], 나[我]와 그[渠]라는 대칭구조로 짜여있다. 첫 줄은 평이하게 보면 남의 견해나 외부의 경계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주체성을 지니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구절이 상식적 차원의 나와 남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왜냐면 중생은 타인과 타인의 욕망을 나와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굳이 라캉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살다 보면 헛헛한 기분이 몰려오면서 나의 삶이 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온 삶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중생이 타인의 영향을 벗어난 주체성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던져진 돌멩이가 낙하하면서 떨어질 곳을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믿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남에게 구하지 말라’는 동산의 말은 현상적 타인이 아니라 ‘네가 자기라고 착각하는 타인’에게 구하지 말라는 말로 읽어야한다. ‘내가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타인’을 불교용어로 바꾸면 무명이자 망념이다. 그렇다면 뒤에 등장하는 나란 욕망과 미망을 벗어난 부처로서의 나다. 여기까지가 동산이 성취한 깨달음의 본질이다.

다음 줄부터 동산은 깨달음의 작용을 노래하는데, ‘나’와 ‘그’란 용어가 등장한다. 그란 누구인가? 그는 곧 나이지만 나는 그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나의 욕망을 억제하거나 윤리성을 추동하지만, 그는 나의 의도나 욕망으로 지배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내게 완전한 ‘타자’인 것이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타자의 얼굴’ 덕분에 우리가 윤리성과 인간됨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망을 벗어나 깨달은 이는 도처에서 타자들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곳곳에서 ‘그’를 만나는 행각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불보살의 자비행이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만난 53명의 선지식 역시 ‘나’로 환원할 수 없었던 타자들이었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은 모든 중생이 서로를 타자로 모시는 세상인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사회에 팽배한 아시타비나 내로남불은 타자가 타자인 줄 모르는 중생의 무지와 무명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헛된 ‘타인’을 ‘나’라고 믿으면서 실체도 모호한 집단의 대의와 진영논리에 휩쓸려 정작 모셔야 할 ‘타자’는 힘으로 절멸시켜 ‘나’의 확장으로 삼을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길바닥에 나와서 시위를 하거나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참으로 참혹하고 비정한 세상이다. 부처님, 비옵나니, 인간의 탈을 쓰고도 이 땅을 아귀, 수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한국의 중생들을 부디 불쌍히 여겨주시길! 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이다.

강호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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