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짐꾼들을 보았습니다. 내 눈에 그들은 시지푸스와 같은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걸려 올라가는 험한 산길을 그들은 이틀 만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삼십 킬로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손에 쥐는 돈은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고, 만약에 다치기라도 하면 굶어야 하는 것입니
롯지에 도착해서도 컨디션이 안 좋았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서 아무것도 못하겠고, 추워서 움직이기도 싫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추워보였는지 포터가 자신이 가지가 있던 뜨거운 물병을 건넸습니다. 정상이었다면 그도 추울 텐데 하며 받지 않았을 테지만 고산증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는지 물병을 빼앗다시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차를 시켜서 포터와 함께 마셨습니다. 뜨거운 것이 좀 들어가자 약간 정신이 차려졌습니다.우리가 차를 마시면서 안나푸르나 산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을 감상하고 있을 때 남편이 뒤늦게 왔습니다. 혼자 사진을 찍다가 늦게 왔는데 롯지를 못 찾아서 꽤 헤맨 모양입니다. 남편은 우리가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가는 바람에 자기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면서 많이 삐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들 힘들었기 때문에 그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것처럼 힘든 기분인데 다른 사람 기분 헤아려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점심 무렵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 도착했습니다. 롯지가 양지바른 곳에 있어 점심을 기다리며 약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말쑥한 마차푸차레 봉우리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습니다.우리가 주문한 감자와 라면이 나왔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라면도 맛이
고도 3천 2백m의 데우랄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황량해졌습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면서부터는 기온이 확연하게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히말라야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데우랄리를 향해 가는 길은 상상했던 그 히말라야였습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묵묵하게 걷도록 만드는
밤부에서 도반 오르는 구간은 걷기에 좋았습니다. 평탄했고,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길 양쪽으로 대나무가 울창했으며, 아래쪽으로는 계곡이 흘렀습니다.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바람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걷는 게 보약인지 한참 걷다보니 피로감도 없어지고 기분도 한결 좋아졌습니다.출발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도반에 도착
매번 느꼈지만 점심을 먹고 출발할 때면 처음 30분 정도는 정말 힘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배낭은 더 무겁게 여겨지고, 무릎도 갑자기 아픈 것 같고, 무엇보다 나쁜 것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걷다보면 언제 그런 기분을 느꼈나 싶게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마음은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겁다고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평범한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준비물도 필요하지가 않았습니다. 라면에 믹스커피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정말 소박한 준비물이었는데 그런데도 난 평생 기억될 행복을 느꼈습니다.
안나푸르나산 롯지에서 다섯 밤을 잤는데 밤마다 이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원래는 약간 여유 있게 6박 7일 일정으로 천천히 히말라야를 만끽할 생각이었는데 추위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서둘러 하루를 앞당겨 5박 6일만에 베이스캠프를 찍고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봄날의 정취에 취한 채 1시간 30여분을 행복하게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시련이 닥쳤습니다. 3백 미터나 되는 출렁다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건물 5층 높이에, 아래로는 거세고 깊은 물이 흐르고, 거기다 계속 바람에 흔들리는 다리 위를 15분가량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2층 올라가는 것에도 공포를 느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시작지점인 마큐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4륜 구동 SUV에는 우리가 고용한 포터가 탔고, 인도를 여행하다 왔다는 A가 함께 탔습니다. 30대 초반쯤 보이는 A는 포터 없이 20 킬로그램이나 되는 배낭을 혼자서 지고 산을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선택이 다소 무모하게 생각됐습니다. 차가 한참 달려 나야풀에 도착했습니다.
예약한 숙소가 있는 타멜거리로 향하면서 바라본 카트만두의 밤 풍경은 심난했습니다. 가게는 다 문을 닫았고 인적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가로등 희미한 불빛에 비친 네팔의 수도는 흑백사진으로 봤던 한국전쟁 후의 서울 풍경 같았습니다. 가난하고 어수선했습니다.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 옆으로 반쯤 무너진 채 앙상한 속살을 내보이는 건물이 있고, 무너진 건물에서 떨어진
마냥 기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만큼 부담도 컸던 모양입니다. 동생은 마치 히말라야를 천국처럼 말했는데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 천국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산증이 두려웠습니다. 고산증은 해발 3000m쯤 위치한 ‘데우랄리’라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두통을 앓거나 불면증, 어지럼증, 심할 경우 호흡곤란을 겪으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 글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눈사태로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히말라야에 대한 두려움이 슬금슬금 올라왔습니다. 광저우에서 카트만두 갈 때 생긴 갑작스러운 두통은 이런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말한 천국에 가면서 난 심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 겨울이니만큼 눈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준비물을 제대로 안 챙긴 것 같은 찜찜함, 과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등, 산에 오르기도 전에 걱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천국에 가면서 걱정을 한가득 안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경고였는지 갑작스럽게 두통이 생겼던 것입니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만난 불상을 향해 무사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